[조선일보 제공] “오늘 오전 집 팔 시기를 고민하던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빨리 팔아달라’고 하더군요. 5억원대 집이라 아무래도 정부 대책으로 피해를 볼 것 같다면서요.” 4일 서울 강동구 S공인의 양 모 사장은 “안 그래도 썰렁하던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 규제 방침에 이어 정부가 DTI(대출자의 소득 수준에 따라 대출금액을 제한하는 제도) 규제를 6억원 이하 주택으로 확대하는 대책을 추진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더욱 얼어붙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나타난 매수세 실종 상태가 지속되면서 가격 하락을 예상한 매물들이 하나 둘씩 나오고 있다.
◆급매물도 안팔려…거래 공백에 조정 국면
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조치로 거래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경기도 구리시 ‘개미공인’ 김미숙 사장은 “드문드문 걸려 오던 전화조차 오늘은 한 통화도 안 오고 있다”며 “11월 말부터 거의 매매를 하지 못했는데 당분간 이런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봉천동 ‘한강공인’ 관계자는 “매수자와 매도자의 호가(呼價) 차이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며 “그러나 대출 수요가 막혀서인지 사려는 사람들은 좀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고덕주공 일부 평형은 이미 한 달 전에 비해서 1000만~2000만원씩 하락하고 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작년 말만 해도 급매물은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올 들어서는 매수자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산 ‘한빛공인’ 김익찬 사장은 “잇단 대출 금리 인상으로 ‘안 그래도 힘들다’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앞으로 젊은 부부나 자영업자의 매수세가 줄어드는 등 수요 감소요인이 커 집값이 영향을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자들도 부동산 떠나나…고가주택도 주춤
고가(高價)의 주택시장도 거래 중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6억원 이상 주택에 대해서는 이미 DTI 40% 규제가 적용되고 있었지만, 종합부동산세 부담과 정부의 각종 분양가 인하정책 여파로 수요가 이전만큼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건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33평 분양권 가격은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한 달 사이 2000만~3000만원 정도 빠졌다. 12월 초 11억2000만~11억3000만원(추가부담금 포함)에서 최근 11억원 정도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 분양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는 강남 요지라는 입지 여건에도 불구하고, 계약률이 50%에 불과했다. 이 아파트는 64~110평형의 대형 평형으로 분양가가 20억~30억원대에 이른다.
남산 조망권을 강조한 서울 남대문 인근의 S주상복합아파트(42~91평형) 역시 지난 3일 1순위 청약에서 40평형대는 마감됐으나 50평형대 이상은 수도권 1순위에서도 모두 미달됐다. 최근 1순위 청약을 받은 용인 공세동 S아파트도 1순위에서 21명만 신청했다. 분양가가 10억~11억원인 70, 80평형대 대형이라는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부자 고객들은 규제 많은 주택을 정리해 다른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저가 주택은 DTI 규제 여파로, 고가 주택은 정부의 분양가 인하 움직임과 종합부동산세 부담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며 “당분간 이런 조정 국면이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