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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CEO 최고 덕목은 첫째도 '운' 둘째도 '운'

이성재 기자I 2013.12.09 08:00:00
[이데일리 이성재 산업2부장] 연말, 인사시즌이다. 정기인사를 코앞에 두고 있는 기업의 분위기는 한겨울 매서운 날씨만큼이나 차갑다. 때론 혹독하다.평생을 다닌 직장에서의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불황과 불투명한 경기 전망 속에서 올해 인사는 성과위주의 ‘신상필벌’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 하반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갑을논란’ ‘막말파동’ 등이 인사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면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불과 몇 년 전과 너무나 달라진 환경이다. 남들보다 탁월한 능력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른 최고경영자(CEO) 자리라지만 본인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물러나야 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랬고 남양유업도 내년 상반기에 대표이사 교체가 결정됐다. 이제 개인의 능력보다는 사회적인 환경과 운(運)이 따라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오죽했으면 최근 삼성그룹 인사를 두고 ‘첫째도 운, 둘째도 운, 셋째도 운’이라고 했을까. 넷째와 다섯째를 굳이 붙인다 해도 ‘상사 복’ ‘부하 복’ 정도다. 내부에서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삼성전자 사람들은 “인사는 운이 9할이고, 복이 1할”이라고들 한단다.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능력이나 실적 못지 않은 또 다른 요인이 있다는 뜻도 된다. 최근 만난 10대 그룹 한 임원은 “요즘에는 트렌드가 아주 중요한데, 그걸 잘 타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거 같다”며 달라진 승진 풍습을 설명했다. 30대 대기업에 입사해 CEO에 오르기까지의 경쟁률이 3만분의 1이라고 하니 CEO는 개인의 부단한 노력은 기본이고 운, 환경 등이 총체적으로 만들어낸 자리라 해도 무리는 아니다.그럼 10여 년 전은 어땠을까. IMF를 겪으면서 기업 CEO에게 필요한 덕목은 단연 ‘글로벌 감각’이었다. 이후 IT붐이 국내 시장에 불면서 기업 CEO들에게 ‘창의성’과 ‘진취성’ 그리고 ‘IT적 감각’은 훌륭한 소양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LG경제연구원이 낸 자료를 보면 성공한 CEO가 되기 위한 자질은 명확했다. 미래를 한발 앞서 예측해 사전에 준비하는 ‘선견지명’, 기업의 신성장동력을 만들어 내는 ‘창의성’, 빼어난 인재 기용 능력인 ‘용병술’, 동기부여의 진수 ‘인간미’. 여기에 정직한 품성과 도덕성,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회적 책임 등이 중요했다. 한마디로 슈퍼맨이 돼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승진에 대한 요건이 진화했다. 사회나 기업도 일정한 패턴을 갖게 됐다. 10여 년 전에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절실하다는 사회적인 요구로 인해 CEO들의 덕목이나 소양에 대한 진화도 그에 상응하는 가치들로 채워졌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어찌 변했을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운을 최고로 꼽는다면 그 다음으로 기업 CEO들에게 중요한 소양이나 덕목은 준법성 또는 준법의식이다. 소셜미디어의 급격한 성장, 이해관계자들의 영향력 향상, 세계적 반부패 기조, 규제기관들의 날카로운 관심, 경제민주화와 상생 등이 부각하면서 10년 사이 떠오른 현상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은 얼마나 그 진화속도에 발맞춰가고 있는가. 올해 문제를 일으킨 기업들 대부분이 법적인 유죄성에 기반을 둔 케이스들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격담합, 비자금 조성을 통한 탈세, 횡령과 배임, 납품 공문 위조, 뇌물, 개인적 폭력, 안전규정 미준수, 환경오염, 불공정거래 및 하도급 등 범법행위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 결국 이 같은 행위는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에게까지 큰 손실을 안기는 물의를 일으켰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용민 대표는 “이제 한국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업 CEO의 준법의식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사에서 밀렸다고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는가. 운도 기본에 충실한 사람에 따르는 법이다. 강력하고 엄격한 법 준수에 대한 CEO의 의지가 회사를 존경받는 기업으로 만드는 첫 덕목이 됐다. 10년이 지나면 또 다시 달라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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