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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상 이 작품] 90년대·21세기 일상, 한국적 재즈로 꿰뚫다

김미경 기자I 2017.11.23 05:35:00

-심사위원 리뷰
뮤지컬 ‘서른즈음에’
‘음악계 큰형님’ 강승원 노래 무대 위로
평범한 우리 이야기 들려주다
사운드의 여백·세련된 리듬과 번뜩이는 비수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언어
내달 2일까지 이화여대 삼성홀

뮤지컬 ‘서른즈음에’의 한 장면(사진=파랑나무).


[박기영 가톨릭관동대학교 실용음악학과 교수] 뮤지션이 사랑하는 음악감독 강승원의 노래들이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12월 2일까지 공연하는 ‘서른즈음에’이다. 강승원은 1992년 KBS 2TV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를 시작으로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의 음악감독을 맡아왔으며 고 김광석, 성시경, 윤도현의 히트곡들을 작곡한 히트메이커이기도 하다. 음악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많은 뮤지션이 음악적 멘토로 삼는 음악계의 ‘큰 형님’이다.

작품 속 대학 시절 ‘현식’이 몸담고 있는 노래동아리로 소개되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실제 1994년에 1집을 발표했던 퓨전 재즈 스타일의 보컬그룹이다. 리더 강승원을 비롯해 여자 셋 남자 셋으로 구성된 ‘우·동·사’는 90년대 한국에서 가장 서양적인 음악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던 퓨전 재즈를 정겨운 ‘우리 동네’의 선율로 토착화한 팀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퓨전 재즈는 한국화하기에는 지나치게 세련되고 화려한, 다분히 미국적인 음악스타일로 여겨지고 있었다. 강승원은 ‘우리 동네 사람들 1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른즈음에’에서도 21세기 도시에서 살아가는 한국 성인들의 평범한 일상과 90년대 젊은 대학생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한국화한 재즈’라는 음악언어로 멋지게 꿰뚫고 있다.

‘우리 동네 사람들 1집’에서부터 뮤지컬 ‘서른즈음에’를 관통하는 음악적 중추는 아마추어리즘으로 가장한 정교한 프로페셔널리즘이다. 강승원의 음악에서는 성공가도를 의식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느낄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부터 멀찌감치 비켜나 뒷짐 지고 서서 짐짓 딴청 부리는 것 같은 그의 음악에는, 하지만 감칠 맛 나는 프레이즈들과 재즈 트리오 편성을 골간으로 하는 세련된 리듬, 금관악기의 화려한 사운드와 같은 번뜩이는 비수가 감춰져있다. 그렇지만 그 비수는 결코 날카로운 날을 드러내는 적이 없다. 2시간 내내 사운드의 여백이 주는 한가로움의 정서가 비수의 날을 감싸고 있다. 언뜻 들으면 허술한 듯 느껴지기까지 하는 사운드의 여백은 사실 드라마의 완성을 위한 필수적인 공간이다. 이 드라마는 관객이 그 여백을 채움으로써 완성된다. 아니 채우지 않고 담담한 여운으로 남겨두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뮤지컬 ‘서른즈음에’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미덕은 이 드라마가 21세기가 되어도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무대 위에 자극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황금빛으로 장식된 환각의 제국을 조립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하찮은 일상과 서글픈 상념을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혹자는 작품의 내용에 대해 진부한 클리셰라고 아쉬워하지만 어쩌랴, 우리들 삶이 진부한 클리셰의 연속인 것을. 뮤지컬 ‘서른즈음에’는 보잘 것 없고 남루한 일상이 ‘어쩌면 기적’일 수도 있음을 일깨운다. 그리고 수많은 갈등과 고민 끝에 최선을 다해 선택한 결과가 지금의 나란 존재임을, 우리가 매 순간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한다.

뮤지컬 ‘서른즈음에’의 한 장면(사진=파랑나무).
뮤지컬 ‘서른즈음에’의 한 장면(사진=파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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