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3000억 한국은 좁아서…' 美·中·日서 '흥행 롱런' 넘본다

장병호 기자I 2017.09.04 06:00:00

한국 뮤지컬 해외진출 20년…현지 장기공연 도전
'마타하리' 日 극장과 라이선스 계약
내년 1~2월 오사카·도쿄서 공연
'팬레터' 홍콩 왕가위 감독 투자받아
브로드웨이 작품 '어거스트 러쉬'
CJ E&M 단독 프로듀서로 제작

내년 일본 라이선스 공연을 하는 뮤지컬 ‘마타하리’의 2017년 공연 장면(사진=EMK뮤지컬컴퍼니).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한국 뮤지컬이 해외 진출을 시도한지 20년이 지났다. 1997년 ‘명성황후’가 창작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흘간 총 12회 공연을 펼친 ‘명성황후’는 2만5000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뮤지컬의 가능성을 해외에 처음 알렸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뮤지컬은 연간 3000억원 규모를 자랑하는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시장이 정체되면서 뮤지컬 제작사들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끊임없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방식도 다양해졌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명성황후’처럼 단기 투어 형식으로 해외에서 공연했다면 2010년을 전후로 라이선스 계약를 통한 해외 진출이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해외 제작사와의 기획·투자 등 협업을 통한 해외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부 교수는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한국 뮤지컬에게 해외 진출은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숙원사업”이라고 말했다. 원 교수는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과거에는 산업적인 의미보다는 ‘우리 문화의 해외 진출’이라는 당위성이 더 컸다면 2010년대 이후에는 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기 위한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생각으로 보다 장기적으로 해외 진출 시도를 이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의 중국 공연 장면(사진=라이브).


△라이선스 계약으로 안정적인 성과 기대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해외 진출은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종욱 찾기’ ‘빨래’ 등이 대표적이다. 사드 직격탄으로 중국 공연이 중단됐던 ‘빨래’는 지난 6월 다시 무대에 올랐다. ‘김종욱 찾기’도 8월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서 1년 만에 재공연해 인기를 이어갔다.

최근에는 대극장 뮤지컬도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다. 충무아트센터가 제작한 ‘프랑켄슈타인’은 지난 1월 일본에서 대극장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라이선스 공연을 가졌다. EMK뮤지컬컴퍼니가 제작한 ‘마타하리’도 일본 우메다 예술극장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내년 1월과 2월 각각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과 도쿄국제포럼에서 두 차례 공연한다. EMK뮤지컬컴퍼니 관계자는 “‘마타하리’는 기획 단계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한 만큼 현재 일본 이외의 다른 나라와도 공연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뮤지컬 제작사들이 라이선스 계약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이유는 장기적인 공연으로 보다 안정적인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카페인’ ‘폴 인 러브’ ‘런 투 유’ 등으로 일본과 중국에서 투어 및 라이선스 공연을 진행했던 연출가 성재준은 “창작자 입장에서도 단기 투어보다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한 해외 진출이 해외에서 보다 장기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 뮤지컬이 해외 진출을 통해 시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기 공연으로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한국 뮤지컬의 가능성을 보고 직접 투자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제작사 라이브는 오는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팬레터’에 홍콩 왕가위 감독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발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왕가위 감독이 설립하고 소유한 음악회사 ‘블락투뮤직’이 투자사로 참여하는 것이다.

라이브는 그동안 ‘총각네 야채가게’ ‘마이 버킷 리스트’ 등으로 중국과 일본에 진출해 성과를 내왔다. 라이브의 박서연 기획이사는 “라이브에서 제작한 국내 공연 중 해외에서 투자를 받은 것은 ‘팬레터’가 처음”이라면서 “‘팬레터’를 통해 현지 투자사와 파트너십을 잘 맺어 놓는다면 앞으로의 해외 진출 사업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보편적인 주제로 해외시장 공략해야”

CJ E&M은 해외 작품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2004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한 ‘우먼 인 화이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빅 피쉬’ ‘킹콩’ ‘보디가드’ 등 26편의 작품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단순 투자자로 해외 시장과 만나면서 쌓은 인프라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2013년 ‘킹키부츠’부터는 공동제작자로도 작품에 참여해 해외 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는 ‘어거스트 러쉬’를 단독 프로듀서로 기획·제작 중이다. 지난 6월 뉴욕에서 투자자 및 극장 관계자들이 참석한 비공개 크리에이티브 워크 세션을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내년 하반기부터 워싱턴 D.C.와 시카고에서 공연한 뒤 2020년 브로드웨이에 올린다는 계획이다.

CJ E&M 공연사업부문 커뮤니케이션팀의 박종환 팀장은 “‘킹키부츠’ 이전까지는 국내 공연사업 확장을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네트워킹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투자에 나섰다”면서 “현재는 해외 뮤지컬의 공연권 확보와 함께 직접 제작하는 형태로 해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이 보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과의 교두보 역할을 할 마켓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 연출은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뮤지컬을 해외 시장에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면서 “영화처럼 뮤지컬도 한국과 해외의 제작사가 함께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대형 켓이 있다면 향후 뮤지컬의 해외 진출에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적인 것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테마의 작품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지 교수는 “최근 해외 진출을 시도하는 작품들은 한국적인 색깔에서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테마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현지 스태프와 관객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할 수 있는 코드를 우리만의 정서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J E&M이 공동 기획·투자로 참여한 뮤지컬 ‘킹키부츠’의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사진=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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