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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투자레슨] 액티브 ETF, 진보인가 퇴행인가

송길호 기자I 2023.10.12 06:15:00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지난 2007년 좋은 헤지펀드를 발굴해 고객에게 추천해 주는 ‘재간접펀드’(fund of fund) 사업자인 프로테제파트너스 대표 테드 세이즈는 워런 버핏이 한 말을 듣고 분개했다. 워런 버핏이 ‘아무리 유능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이라도 주식시장을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 수익률보다 장기간 나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세이즈와 버핏은 서한을 주고 받으면서 흥미로운 내기를 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10년 동안 프로테제파트너스가 선정한 5개의 헤지펀드와 S&P500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을 비교해 진 쪽이 100만 달러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2017년 내기의 결과가 나왔다. 버핏의 완승이었다. 10년 동안 S&P500지수를 추종하는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은 125.8% 상승한 반면, 헤지펀드 5개의 수익률은 87.7%와 42.3%, 21.7%, 2.8%, 2.0%에 그쳤다. 단 한 개의 헤지펀드도 인덱스 펀드의 수익률을 앞서지 못했다. 우수한 두뇌와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확신으로 무장한 헤지펀드 운용자들이 시장 수익률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냈던 것이다.

워런 버핏은 실은 시장 수익률을 추종하는 투자자가 아니다. 오히려 그 대척점에 서있다. 버핏과 같은 가치투자자들은 때때로 시장이 보여주곤 하는 비합리성에 주목한다. 시장은 대체로 효율적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어서, 투자 열기가 달아오르는 강세장에서는 탐욕이, 약세장이 지속될 때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곤 한다. 워런 버핏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조울증 환자와 같은 시장의 이런 속성을 ‘미스터 마켓’이라고 불렀다. 시장의 비합리성은 가치투자자들에게 좋은 친구이다. 시장이 침울한 울증에 빠져있을 때 적정가치 보다 낮은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고, 시장이 조증으로 달아오를 때는 유리한 가격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버핏은 시장 수익률을 추종하는 투자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통찰력있는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훈련, 그리고 투자에 적합한 기질이 요구되는데,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인덱스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차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버핏의 주장이었다.

버핏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시장 수익률에 천착했던 이들도 있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 수익률 추구가 투자의 최우선 목표가 돼야 한다는 주장은 1950~60년대 미국의 대학 연구실에서 시작됐다.

해리 마코위츠는 1952년 ‘포트폴리오 선정’이라는 짧은 논문에서 수익은 위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폈고, 1962년 윌리엄 샤프는 ‘자본자산가격결정이론(CAPM)’을 만들어내면서 위험의 개념을 세분화해 정리했다. 이런 흐름을 집대성한 이는 보수주의 경제학의 성지인 시카고대의 유진 파마 교수였다. 유진 파마는 ‘효율적 시장 가설’을 통해 주식시장이 너무도 효율적이기 때문에 미래의 주가 예측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주가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정보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초과이익을 얻기 힘들고, 초과 이익은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가능하다는 주장을 폈다. 핵심은 시장의 결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시장의 전능함을 투자의 영역에서 개척했던 마코위츠와 샤프, 파마는 모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이들의 구상은 시장을 복제하는 ‘패시브(passive) 투자’를 통해 현실화됐다. 투자자들은 주식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해 여러 회사들을 골라 투자하지만 존재 자체가 효율성의 화신인 시장, 예컨대 주식시장의 대표지수들인 S&P500지수, KOSPI 등의 성과를 장기적으로 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가 되면서 각종 지수 추종형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웰스파고 은행은 미국증시의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최초의 인덱스 펀드를 만들었고, 자산운용사 스테이트 스트릿은 시장을 개별 주식처럼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만들어내 출시했다.

특히 요즘 투자의 대세가 되고 있는 ETF는 투자의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ETF로 구현이 되지 않는 전략이 없다. 시장이 횡보할 때 콜옵션을 매도해 수익을 얻는 ‘커버드 콜’ 전략은 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했는데, ETF로 동일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심지어 ETF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시되지만 미국에선 합법화된 대마에도 투자할 수 있다.

다만 최근 횡행하고 있는 ETF, 소위 액티브 ETF들은 지수 추종 투자를 애초에 고민했던 이들의 이상과는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놓고 ‘액티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는 것처럼 이들은 수동적 투자자(패시브)이기를 거부한다. 시장 전체가 아닌 특정 종목을 매수하는 행태가 ETF라는 외피를 쓰고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이런 행태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했던 패시브 투자 창시자들이 경계했던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패시브 펀드의 고안자들은 시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고 힘을 쏟아봤자, 장기적으로 시장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시장의 전능한 능력을 전혀 믿지 않는 워런 버핏 같은 사람마저도 잡다한 전략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것보다 그저 시장 대표지수의 수익률을 추종하는 것이 차선으로서의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프로테제파트너스와의 내기에 응했다.

ETF는 투자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지만, 편의성과 투자의 성패와는 상관성이 적다. 사이버 거래는 투자를 편하게 해줬지만, 회전율을 높여 장기 수익률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그럴듯한 마케팅으로 포장된 ETF들은 투자자들을 유혹하지만, 투자자들에게는 과도한 자극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은 깊게 하고, 행동은 적게 해야 한다고 보는데, 편리함으로 포장된 각종 소음은 오히려 투자에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액티브 ETF는 시장에서 버블을 만들기도 한다. 미래 가치를 능동적으로 추정하기 보다는 현재 시장에서 형성돼 있는 가치를 기계적으로 추종하기 때문이다. 많은 액티브 ETF들은 시장의 인기테마에 편승해 주가 후행적으로 설정되곤 한다. 현재의 질서를 수동적으로 추인하면서, 기존 인기 종목의 주가를 버블권까지 올려 놓기도 한다. 공학적 관점에서 액티브 ETF는 진보이지만, 철학적 관점에서는 퇴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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