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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어요”

이순용 기자I 2013.12.25 09:52:21

춘천성심병원 몽골 시각장애인 두명 초청, 무료 각막이식수술로 시력회복

[이데일리 이순용 기자]몽골 울란바토르에 사는 냠델레그(49)씨는 아내와 7명의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지만 가족들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흐른다. 앞이 보이지 않아 가족들에게 ‘짐만 됐다’는 생각에서다.

중학생이던 1981년부터 별다른 이유 없이 조금씩 안 보이더니 1988년에는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나빠졌다. 전기를 고치는 기술이 있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아내는 자신을 대신해 8명의 생계를 책임졌다. 냠델레그씨는 어떤 방식으로든 가정에 보탬이 되고 싶었지만 앞이 보이질 않으니 가만히 있는 게 오히려 아내를 돕는 것일 만큼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들도 앞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손과 발 역할을 했다. 친구들과 노는 대신 집안에만 있는 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까지 부축하고 식사를 마련하는 것도 모두 7명의 아이들 몫이었다.

그리고 요즘 말 솜씨가 한창 늘은 손녀의 재롱에 푹 빠져있는 몽골인 냠수렝(여·60)씨. 그녀도 1988년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알레르기로 눈에 염증이 생기더니 결국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됐다. 1974년부터 회계사로 일했지만 업무 효율이 떨어져 1991년 결국 실직했다.

이후 아들 내외와 함께 가축을 기르며 살아왔지만 그렇게 예뻐하는 손녀와 손자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주지 못해 가슴 한쪽이 아팠다. 몽골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유일한 치료법이 각막이식수술이지만 몽골은 장기기증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다 수술도 어려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치료를 해준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술비와 항공료, 체재비까지 지원해준다는 희소식이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황호식 교수(왼쪽)와 한국에서 각막이식수술로 시력을 회복한 냠수렝(가운데)씨와 냠델레그씨.
◇한번 시력 잃으면 숙명이라 여기는 환자들

우리나라에서 한 해 평균 실시되는 각막이식수술은 400건 정도다. 한 사람에게서 적출한 각막을 두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어 어느 장기이식수술보다 효율적이다. 삶의 질 측면에서도 환자 만족도가 높다. 아직까지 대기자 모두를 충족시키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활발한 캠페인 전개와 인식 변화로 각막 기증은 점차 증가 추세다. 과거에 비하면 각막이식수술도 꾸준히 늘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수술로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하지만 저소득국가는 그렇지 않다. 우리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장기기증 건수도 많지 않은데다 적출할 수 있는 기술이나 이식할 수 있는 술기도 없다. ‘한번 시력을 잃으면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숙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만큼 환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의료 네트워크를 통한 ‘2013년 새빛 나눔 프로젝트’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이 아시아 저소득 국가의 시각장애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자 강원지역사업평가원과 함께 ‘2013년 새빛 나눔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교직원 바자회에서 올린 수익금과 강원지역사업평가원의 도움으로 항공권을 포함한 체재비와 수술비를 모아 환자와 보호자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로 결정했다.

2012년부터 몽골에서 망막수술을 시연하며 몽골의료지원사업을 전개했던 안과 신민철 교수팀이 본원 안과에서 연수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갔던 몽골 의사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혔다. 안과 의사들은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는 환자 6명 중 2명을 최종 선정했다. 그 결과 냠델레그 씨와 냠수렝씨가 선정됐다.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은 여권 발급과 두 사람이 언제든 한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행정적인 업무 처리를 담당했다.

◇희망을 찾아 도착한 곳 ‘춘천’

마침내 지난 12월 14일 각막이식 신청 후 대기 중이던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각막 기증 신청이 접수됐다는 내용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A씨의 가족들이 ‘다른 이들에게 뜻 깊은 선물을 주고 싶다’며 장기기증을 선택했고 연령과 긴급도를 따져 두 사람에게 각막이 주어졌다. 안과 황호식 교수팀은 각막 적출을 위해 충청북도 청주의 충북대학교병원으로 달려갔다. 30분 정도의 시간 동안 황호식 교수는 조심스레 각막을 적출했다.

같은 시간 냠델레그 씨와 냠수렝 씨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두 사람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손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뜨개질로 옷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들뜬 마음으로 춘천으로 향했다.

12월 17일 강원도 춘천에 도착한 두 사람은 입원 수속과 함께 곧바로 수술 전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와 안축장 검사로 눈 상태를 파악했다. 두 사람 모두 왼쪽에 이식키로 했다.

수술은 다음날인 18일 오전에 이루어졌다. 수술에 걸린 시간은 1시간 정도. 강원도에서 2005년 이후 전무했던 각막이식수술이 8년 만에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황호식 교수는 지난 4월 이후 총 17례의 각막이식수술을 실시했다.

황호식 교수는 “아시아 저소득국가 대부분은 각막이식수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술기가 없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선진의료기술로 참 의미를 전달하는 차원에서 이번 무료 수술사업을 계획, 추진했다”며 “요즘 무분별한 에이전시를 통해 해외환자를 유치하는 사례가 많지만 한림대학교춘천성심병원은 본원에서 연수를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의사들의 추천 또는 치료받은 환자의 소개로 방문하는 해외환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왼쪽 눈을 가렸던 안대를 24일에 풀고 몽골로 돌아갔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냠델레그 씨는 “이제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무엇보다도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셔서 감사하다. 몽골에 돌아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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