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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꼼수 탈당' 국회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국회기자 24시]

박기주 기자I 2022.04.23 09:15:00

민형배, '검수완박' 법안 통과 위해 민주당 탈당
소수정당 위한 안건조정위 형해화 비판
국회선진화법 본회의 통과 10년 만에 다수당이 제도 무력화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선진 국회는 결코 제도로만 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문화와 관행이 선진화돼야 합니다.”

지난 2012년 5월, 이른바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대행의 말입니다. 법과 제도가 선진화된다 해도 국회의원의 개선 의지와 문화, 관행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이 제도는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국회 본회의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우여곡절 끝에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지 10년이 됐지만, 국회의 시계는 오히려 거꾸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소수 정당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 오히려 절대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의 목소리를 강화하는데 사용되고 있어서 입니다. 국회의 ‘선진(先進)’이 아닌 ‘후진(後進)’을 돕는 법이 되버린 셈이죠.

최근 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검찰의 수사 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이른바 ‘검수완박’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둘러싼 갈등이 ‘국회 후진’의 주 무대입니다. 물론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찰 개혁 중재안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의 원내대표가 수용하기로 하면서 극적으로 갈등이 봉합됐지만, 그 과정에서 나온 일부 움직임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민형배 (지금은) 무소속 의원의 얘기입니다.

‘양향자 카드’ 무산되자 ‘민형배 카드’ 꺼내든 민주당

민 의원은 지난 20일 민주당을 탈당했습니다. 무소속 의원이 된 후 검수완박 법안 통과를 지연시킬 수 있는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비교섭 단체 몫을 민 의원이 차지,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소수정당의 권리를 보장하는 핵심 제도 중 하나입니다. 안건조정위원 정원 6명은 여당 의원 3명, 야당 의원 3명으로 구성되고, 야당 몫 1명은 비교섭단체(무소속 포함)에 돌아갑니다. 민 의원이 이 중 한 자리를 차지해 4대 2 구도를 만들겠다는 것이 민주당이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한 기구를 무력화시키는 행보였죠.

더 당황스러운 대목은 민주당이 이미 같은 의도로 민주당 소속이었던 양향자 무소속 의원을 해당 법안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 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양 의원이 법안 처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자 민주당은 전략을 대폭 수정, 민 의원이 그 역할을 맡도록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혁신추진위원회 소속 민형배 의원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제4차 혁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장경태 의원, 민 의원, 윤영덕 의원.(사진=뉴스1)
“경악 금치 못해, 정치 희화화하는 것” 비판 쏟아져

너무 의도가 뻔한 움직임이었던 탓에 ‘꼼수 탈당’이라는 비판은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습니다. 당사자 격인 양 의원은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고, 민주당 내 ‘미스터 쓴소리’ 이상민 의원도 “고민이 있었겠지만 정치를 희화화하고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정치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습니다.

다만 민 의원은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낸다. 낯설고 두려운 길이지만 외롭지 않게 손 잡아달라”고 자신의 결정 배경을 설명했고, 우원식 의원도 “민형배 의원의 불가피한 선택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같은 ‘꼼수 탈당’은 여야가 국회의장 중재안을 수용하기로 하면서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국회의 시계가 10년 전으로 돌아가 버린 이 상황, 누더기가 돼 버린 국회의 제도, 그리고 신뢰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워 보입니다. ‘정치 문화와 관행이 선진화돼야 선진 국회가 된다’는 10년 전의 말을 곱씹어볼 때입니다.

검수완박 법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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