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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식물이어도 장미꽃 줄기와 나무 줄기의 표면은 그 거침과 단단함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1~2년만 살다 죽을 꽃과 달리 나무는 스스로를 오래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세포벽이라는 외투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디자인해 입은 것이다. 나무는 식물 세포벽에 기계적 강도를 부여하는 리그닌(Lignin)이라는 세포벽 구성물질을 더 많이 가짐으로써 외부의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 리그닌이라는 물질이 식물 기관이 본체에서 분리되는 탈리현상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5월 국내 과학자가 밝혀냈다. 곽준명 DGIST 교수와 이유리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연구위원 연구팀은 식물이 발달과 노화 과정 중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정확한 위치에서 잎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규명했으며 이 연구 성과는 세계 3대 학술지 중 하나인 셀(Cell)지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식물의 탈리가 일어나는 경계에서 이웃하는 두 세포(식물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탈세포, 꽃잎이 떨어지고 식물 본체에 남는 잔존세포) 중 이탈세포에서만 리그닌이 형성돼 꽃잎을 식물의 본체로부터 정확한 위치에서 떨어지게 하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확인했다.
리그닌은 이웃하는 세포 사이를 분리시키는 세포벽 분해효소가 꽃잎이 탈리되는 경계선 위치에만 밀집되게 하고 주변 세포들로 퍼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리그닌이 육각형의 벌집구조를 형성해 기능을 발휘하는 데 최적인 구조를 갖고 있음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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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리그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면 울타리의 경계가 모호해져 세포의 정교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깔끔하게 떨어져야 할 세포가 식물본체에 남게 되면 그 부분에 큐티클층이 형성되지 않아 외부의 위험인자로부터 식물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이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를 응용해 탈리 현상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화합물을 찾는다면 탈리 현상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낙과로 잃어버리는 식량 작물의 손실을 줄이거나 잎의 탈리를 조절해 수확량을 늘릴 수도 있게 된다. 도움말=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2019 페임랩 국제대회’ 한국인 최초 파이널리스트)
◇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 “초심 잃지 않는 ‘과학 소통의 창구’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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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알아본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페임랩 코리아 2019’에 지원하게 됐다. 이에 대해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거 페임랩 영상들과 과학축제, 유튜브 등 정말 다양하고 참신한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 영상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하고 싶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 예선이라도 붙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발표 준비에 매진한 그는 종합예선과 본선은 물론 ‘2019 페임랩 코리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이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낳은 것이다.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생물과 화학,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일, 이왕 시작한 일이라면 완벽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다”며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여러 경험과 활동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훌륭한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학문에 관심이 있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그 학문을 최대한 흥미롭게 소개하고, 훌륭한 연구로 제자들의 연구자로서의 삶에 더 나아가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삶에 본보기가 됨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면서 벌써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교수가 되기까지는 십 년도 넘는 시간을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된 지금 벌써 그 꿈을 이룬 것 같다”며 “멀게만 보이던 꿈을 이룬 지금 새롭게 설정한 목표는 ‘제대로 잘하기’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항상 이왕 시작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최고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된 점에 감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가능한 더 많은 대중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영국에서 열린 ‘2019 페임랩 국제대회’에서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식물의 세포벽을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숨겨진 특별한 코트로 비유해 심사위원들과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특히 영화 ‘킹스맨’ 속 영국 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의 양복과 역시 영국의 유명 가수 아델(Adele)의 노래를 유머코드로 활용하는 등 쇼맨십에도 만전을 기한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조금 아쉬움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세계 각지에서 온 과학자들을 보며 동기부여가 많이 됐고 인간적으로 배운 점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당히 페임랩 국제대회서 한국 최초 파이널리스트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과학커뮤니케이터들도 이만큼 실력있는 커뮤니케이터라는 점을 알릴 수 있어 기뻤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