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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의 과학 라운지](42)꽃잎 떨어지는 정확한 위치 결정하는 물질이 있다?!

이연호 기자I 2019.06.23 10:00:00

동물엔 없는 식물의 세포벽, 외부로부터 세포 보호·형태 유지
세포벽 구성물질 '리그닌', 식물 기관이 본체서 분리되는 '탈리'현상 관여
리그닌,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정확한 위치 결정하는 울타리 역할

[편집자주] 수학, 화학, 물리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 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그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기초과학은 어렵고 낯설게만 느껴져 피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기초과학의 세계에 쉽고 재미있게 발을 들여 보자는 취지로 매주 연재 기사를 게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국 초·중·고등학생 대상 과학 교육 프로그램인 ‘다들배움’에서 강사로 활동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들과 매주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중 재밌는 내용들을 간추려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꽃잎이 떨어지는 탈리현상에 관한 세포 수준에서의 메커니즘. 그림=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생물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세포. 식물 세포는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세포막만 갖는 동물세포와 달리 세포벽이라는 하나의 보호 장치를 더 갖는다. 쉽게 말하면 식물 세포는 동물 세포에 비해 외투를 한 벌 더 껴입은 셈이다. 세포벽은 외부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고 세포의 형태를 유지토록 하는 구조물이다. 세포벽의 역할은 비단 이 같은 구조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세포벽은 세포의 운명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같은 식물이어도 장미꽃 줄기와 나무 줄기의 표면은 그 거침과 단단함의 정도가 전혀 다르다. 1~2년만 살다 죽을 꽃과 달리 나무는 스스로를 오래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세포벽이라는 외투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디자인해 입은 것이다. 나무는 식물 세포벽에 기계적 강도를 부여하는 리그닌(Lignin)이라는 세포벽 구성물질을 더 많이 가짐으로써 외부의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 리그닌이라는 물질이 식물 기관이 본체에서 분리되는 탈리현상에도 깊숙이 관여한다는 사실을 지난해 5월 국내 과학자가 밝혀냈다. 곽준명 DGIST 교수와 이유리 IBS 식물 노화·수명 연구단 연구위원 연구팀은 식물이 발달과 노화 과정 중 리그닌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꽃잎이나 나뭇잎이 떨어져야 할 정확한 위치에서 잎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규명했으며 이 연구 성과는 세계 3대 학술지 중 하나인 셀(Cell)지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식물의 탈리가 일어나는 경계에서 이웃하는 두 세포(식물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탈세포, 꽃잎이 떨어지고 식물 본체에 남는 잔존세포) 중 이탈세포에서만 리그닌이 형성돼 꽃잎을 식물의 본체로부터 정확한 위치에서 떨어지게 하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확인했다.

리그닌은 이웃하는 세포 사이를 분리시키는 세포벽 분해효소가 꽃잎이 탈리되는 경계선 위치에만 밀집되게 하고 주변 세포들로 퍼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리그닌이 육각형의 벌집구조를 형성해 기능을 발휘하는 데 최적인 구조를 갖고 있음도 발견했다.

이탈세포층에 특이적으로 형성되는 리그닌의 구조.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리그닌의 울타리 역할 덕분에 식물은 탈리가 일어나야 할 정확한 위치에서 잎을 분리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꽃잎이 떨어지고 생긴 단면에 큐티클막이 형성된다. 이 큐티클막은 외부 세균의 침입으로부터 식물을 보호해 생존력을 높일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으로 치면 칼로 베인 살의 표면에 딱지가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만약 리그닌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면 울타리의 경계가 모호해져 세포의 정교한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깔끔하게 떨어져야 할 세포가 식물본체에 남게 되면 그 부분에 큐티클층이 형성되지 않아 외부의 위험인자로부터 식물의 생존이 위협받게 된다.

이 연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연구를 응용해 탈리 현상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화합물을 찾는다면 탈리 현상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낙과로 잃어버리는 식량 작물의 손실을 줄이거나 잎의 탈리를 조절해 수확량을 늘릴 수도 있게 된다. 도움말=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2019 페임랩 국제대회’ 한국인 최초 파이널리스트)

◇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 “초심 잃지 않는 ‘과학 소통의 창구’될 것”

‘2019 페임랩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첼트넘 과학축제(Cheltenham Science Festival)
정민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이달 초 영국 첼트넘 과학축제에서 열린 세계 최대 과학소통경연대회 ‘2019 페임랩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당당히 최종 결선 진출 ‘톱(Top) 11’에 선정됐다. 앞서 올해 ‘페임랩 코리아’ 대회에서 최초의 여성 대상 수상자로 우리나라 대표가 돼 이번 대회에 참가 자격을 얻은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한국인 최초로 결선 진출 최종 11인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자신의 스토리텔링 능력을 알아본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페임랩 코리아 2019’에 지원하게 됐다. 이에 대해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거 페임랩 영상들과 과학축제, 유튜브 등 정말 다양하고 참신한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 영상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하고 싶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역 예선이라도 붙어보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발표 준비에 매진한 그는 종합예선과 본선은 물론 ‘2019 페임랩 코리아’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실함이 결국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낳은 것이다.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생물과 화학,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설명하는 일, 이왕 시작한 일이라면 완벽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다”며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여러 경험과 활동들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 행복하다”고 말했다.

훌륭한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그 이유에 대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학문에 관심이 있는 제자들을 대상으로 그 학문을 최대한 흥미롭게 소개하고, 훌륭한 연구로 제자들의 연구자로서의 삶에 더 나아가 한 명의 개인으로서의 삶에 본보기가 됨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싶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되면서 벌써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앞으로 내가 생각하는 교수가 되기까지는 십 년도 넘는 시간을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된 지금 벌써 그 꿈을 이룬 것 같다”며 “멀게만 보이던 꿈을 이룬 지금 새롭게 설정한 목표는 ‘제대로 잘하기’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항상 이왕 시작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최고로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과학커뮤니케이터로서 소통할 기회를 갖게 된 점에 감사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가능한 더 많은 대중과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의 창구’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영국에서 열린 ‘2019 페임랩 국제대회’에서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식물의 세포벽을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숨겨진 특별한 코트로 비유해 심사위원들과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특히 영화 ‘킹스맨’ 속 영국 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의 양복과 역시 영국의 유명 가수 아델(Adele)의 노래를 유머코드로 활용하는 등 쇼맨십에도 만전을 기한 정 과학커뮤니케이터는 “조금 아쉬움도 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세계 각지에서 온 과학자들을 보며 동기부여가 많이 됐고 인간적으로 배운 점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당당히 페임랩 국제대회서 한국 최초 파이널리스트가 되면서 우리나라의 과학커뮤니케이터들도 이만큼 실력있는 커뮤니케이터라는 점을 알릴 수 있어 기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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