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무단 투기 단속 위한 택배 채증, 문제 없을까?

구자형 기자I 2019.05.08 00:15:12

쓰레기 파봉 후 무단투기 단속하는 방식 보편적
택배 송장, 영수증, 고지서 등으로 신원 파악해
정보 우려와 억울한 피해자…단속 장비 확충 필요

(사진=이미지투데이)


“쓰레기에서 택배 송장으로 제 주소와 이름을 알아내니 당황스럽고 소름 끼쳤죠”

관악구에 거주하는 권민철(가명·33) 씨는 최근 쓰레기 배출 과태료를 물게 됐다. 종량제 일반 쓰레기봉투에 바나나 껍질을 함께 배출한 것이 원인이었다. 권 씨는 “바나나 껍질을 함께 버린 내 잘못이 맞다”고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단속이 됐는지 의아해했다. 매일 쓰레기를 배출하는 장소 주변엔 방범용 폐쇄회로(CC)TV도 없었기 때문이다.

과태료 징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택배 송장이었다. 얼마 전 택배를 수령한 권 씨가 이름, 주소 등이 적힌 택배 송장 용지를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버렸기 때문이다. 구청 쓰레기 투기 단속반에서는 봉투를 그대로 파봉해 쓰레기 흔적을 살폈고 그 결과 권 씨를 추적해냈다.

쓰레기 무단 투기를 단속하는 관악구 환경 관련 부서에서는 권 씨의 사례처럼 파봉을 통해 배출자를 추적하고 있다. 택배 송장, 공과금 고지서, 배달음식 영수증 등 추적할 수 있는 사례도 다양하다.

쓰레기 파봉 후 단속…“개인정보 문제없어”

권 씨가 거주하는 관악구 청소행정과 관계자는 “쓰레기 파봉 외에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배출 구역이 아닌 곳에 무단 투기하는 경우나 쓰레기 배출 구분 없이 함께 버리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신원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일이 파봉해서 신원을 추적하는 일은 굉장히 번거롭지만,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배출구역도 있어 파봉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서대문구, 은평구, 양천구 청소 관련 부서에서도 같은 단속 방식을 사용하고 있었다. 쓰레기 속에서 배출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은 세 지자체 모두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입을 모았다. 투기되거나 잘못 배출된 쓰레기 속에서 택배 송장, 고지서 등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 그대로였다.

제주시 회천동 제주회천매립장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사진=뉴스1)


이름과 주소, 연락처가 포함된 자료인 만큼 개인정보보호 관련 문제는 없을까. 지자체 관계자들은 모두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경우는 없다”고 봤다. 은평구 관계자는 “과태료 부과 목적으로만 채증 한 것이니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지자체에서 제3자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쓰레기 단속에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제시한 근거는 질서위반행위규제법과 폐기물관리법이다. 전자는 질서 위반 행위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재판하는 사항을 규정한 법령이다. 후자는 환경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부 소관의 법령이다. 파봉은 두 법령 범위에서 진행되는 보편적인 방식이며, 범위를 벗어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해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지에 대해 단정짓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정보를 수집한 후 목적 범위 내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면서 “공공기관에서 업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인지 따져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답했다. 한편 다른 변호사는 “오히려 택배 송장 그대로 버린 사람에게 개인정보 과실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억울한 사례 발생하기도…단속 장비 확충 필요

지난 2015년 한 블로그 이용자는 쓰레기 배출로 억울한 일을 겪었다며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우체국 대형 상자로 택배를 받은 그는 배송 상품을 꺼낸 후 이름과 주소가 적힌 상자를 그대로 분리수거함에 내놨다. 당시 우체국 택배 중 일부 상자는 매직펜으로 직접 이름과 주소를 적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택배 송장처럼 떼기도 어려웠다.

문제는 상자를 분리수거한 뒤에 나타났다. 누군가 기저귀, 과자 껍질, 소주병 등을 상자 위에 버렸고 이를 오인한 단속반원들이 과태료를 부과 하겠다며 찾아왔다. 블로그 이용자는 “내가 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동의 못하겠다고 답했다”고 강력히 말했다.

게시글뿐만 아니라 댓글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네티즌들이 줄을 이었다. 한 네티즌은 “글과 비슷한 경우였는데 (과태료 부과에) 서명했더니 벌금이 20만원이나 나왔다. 억울해서 잠도 안 온다”고 말했다. 다른 네티즌은 “나는 버린 적이 없으니 억울하다고 말했지만, 단속반원들은 들을 생각도 안 했다”면서 “녹취하고 차량 블랙박스 증거 자료로 구청에 제보하겠다고 하니 그제야 믿었다”고 호소했다. 파봉 후 나오는 개인정보로 단속하다보니 쓰레기 속 정보와 배출자의 정보가 달라 억울하게 피해 입는 사례도 종종 발생했다.

강원 원주시에서 쓰레기 무단투기 방지용 LED 로고 라이트를 설치한 모습. (사진=원주시)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 CCTV 설치 대수는 해마다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약 73만 대였던 설치대수는 2017년에 약 95만 대까지 확충됐다. 쓰레기 무단투기 감시용 CCTV도 함께 늘었다. 광명시가 해마다 발표하고 있는 설치 현황에 따르면 광명시 내에서 지난 2017년 1월 10대에 불과했던 CCTV는 지난 2월 33대까지 늘었다.

하지만 배출 구역 전체를 감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재정적으로 감시카메라 확충이 어려운 지자체에서는 파봉 등의 다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 우려와 억울한 피해 사례를 예방하기 위해 지자체 재정과 단속 장비의 확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스냅타임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