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보수]⑥해외선 3040대표가 정권 교체, 한국선 "어린 것들이…"

유태환 기자I 2018.02.01 05:30:00

캐머런 30대에 英 보수당수·40대에 총리 올라
加·오스트리아도 3040당수 간판으로 정권교체
한국 보수 "어린 애들이 함부로 덤빈다" 인식
혁신=인물…"젊은층, 한국당 지지할 이유 없어"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전(前) 총리. 그는 2005년 38세 나이로 보수당 당수에 오른 뒤 2010년 13년만에 정권을 교체하는 등 10년 이상 보수당을 이끈 젊고 신선한 보수의 상징이다. (사진=AFP)
[이데일리 유태환 기자] [편집자주]한국 보수가 수렁에 빠졌다. 한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산업 역군’으로 칭송받았지만 이제 ‘무능’ ‘부패’ ‘꼰대’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았다. 기존 보수 유권자조차 보수정당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보수 궤멸’ 상태에 대한 우려도 크다. 바람직한 민주주의를 위해 건전한 견제세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데일리는 벼랑 끝에 몰린 보수 정치권의 위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토니 블레어 전(前) 총리의 ‘제3의 길’에 막혀 기를 펴지 못하던 영국 보수당. 보수당은 2005년 38세에 불과한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낙점해 당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캐머런은 “보수당 재건”을 외치며 당내·외부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댔다. 결국 2010년 총선에서 13년 만에 노동당을 꺾고 정권을 탈환했다.

그는 부유한 귀족 가문과 옥스퍼드대 졸업이라는 매력적인 스펙(spec)은 물론 젊은 카리스마적 면모를 바탕으로 2030세대와 중도층까지 당 외연을 넓혔다. 또 낡은 당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기득권 중심의 정책 노선을 과감히 버리고 경제 안정을 앞세워 진보주의 정책도 과감하게 수용했다.

‘보수당 개혁’과 ‘따뜻한 보수주의’를 기치로 보수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캐머런이 총리에 올랐을 때 나이는 43세에 불과했다.

◇ 해외, 3040 당수 내세워 기득권 이미지 탈피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보수당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사용하는 대표적인 돌파 수단이 ‘젊은 피’ 수혈이다. 보수정당 자체가 진보정당보다 노쇠하고 기득권적인 색채를 띨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간판으로 신선한 인물을 앞세워 난관을 뚫고자 하는 전략이다.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 역시 지난 2003년 44세에 보수당 당수로 선출된 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총리이자 당수로 보수정권 10년을 이끌었다. 당시 캐나다는 진보보수당(Progressive Conservative Party of Canada)이 1993년 총선에서 단 2석을 얻을 만큼 보수정당 뿌리가 말라가던 상황이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31세에 보수당인 국민당 당권을 거머쥐었다. 쿠르츠는 지난해 5월 당 대표 대행을 맡아 당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이후 12월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그는 당에 젊음과 개혁으로 상징되는 새 바람과 활력을 불어넣었고,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당 조직을 전면 개편했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정반대다.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 ‘40대 기수론’을 주창한 1969년보다 후퇴하는 분위기다. 당시 신민당에서는 ‘40대 기수론’이 힘을 얻으며 김 전 대통령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 등이 1970년 당 대선 경선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과거 신민당 일부 세력의 ‘40대 기수론’에 대해 “정치적 미성년”·“구상유취(口尙乳臭: ‘입에서 아직 젖 비린내가 난다’는 뜻으로 아직 어리다는 의미)”라며 혹평하던 모습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다.

◇ 한국당, 신선함 안 보여…“인물부터 혁신해야”

한국당 내부에서는 아직도 젊은 정치인들 목소리에 “어린 애들이 함부로 덤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홍준표 대표가 이런 유형의 전형이다.

홍 대표는 대선 경선 당시 사법연수원 후배인 김진태 의원을 겨냥해 “걔는 내 상대가 아니다”며 “앞으로 애들 얘기해서 열 받게 하지 말라”고 평가절하했다.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패배한 뒤 당 전당대회에서는 “애들 데리고 못하겠다. 상식 이하”라고 원유철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2030세대에게 이런 홍 대표는 “어린 것들이…”라는 말부터 앞세우는 ‘꼰대’·‘개저씨’(개념 없는 아저씨)일 뿐이다. 그 결과 대선 득표율보다도 못한 당 지지율과 젊은 층의 철저한 외면에 맞닥뜨리고 있다.

보수정당의 계파·보스 정치 역시 젊은 정치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 중 하나다.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부터 개혁과 소장파의 아이콘이던 남·원·정(남경필 경기지사·원희룡 제주지사·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앞세워 줄 세우기와 온갖 전횡을 일삼은 친박(친박근혜)에게 외면당하다 지금은 친홍(친홍준표)에 막혀 예전보다 못한 존재감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국당의 이념관도 문제다. 냉전시대 논리에서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한국당에서는 그나마 신선하다고 하는 40대 의원들이 앞장 서 “주사파가 청와대를 장악했다”고 주장하거나,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해 “위장 평화공세”라고 날을 세운다. 보수정당이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 인물을 통해 변화의 동력을 확보하고 과거의 구태의연한 사고와 결별하는 게 필수다. 그러나 한국당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당 혁신은 인물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홍준표 대표가 있는 한 젊은 층이 한국당을 지지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서구의 보수정당은 철저한 인적 쇄신과 반성을 통해 혁신했다”며 “그런데 우리는 인적 쇄신은 없고 정강정책은 거꾸로 가고, 인물은 그대로”라고 꼬집었다. 홍 대표는 최근 지방선거 이후에도 당대표로 남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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