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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두부장수보다 계산이 뒤진 한전 전기요금

논설 위원I 2019.07.03 06:00:00
“그럴 줄 알았다”는 타박이 절로 나온다. 한국전력이 그제 내놓은 ‘주택용 누진제 요금체계 개편’ 공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필수사용량 보장 공제 폐지·수정, 계절·시간대별 차등화 등 말이 개편이지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 방안이다. 정부의 ‘여름철 1만원 인하’ 요구를 수용하는 대신 전체적인 전기요금은 올리겠다는 것이다.

한전이 요금인상안을 꺼낸 건 누적 적자를 더이상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요금을 올리기 전에 적자 요인을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요금체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요금체계였지만 2016년에는 영업이익이 12조원에 달할 정도로 경영 실적이 양호했다. 적자로 돌아선 것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본격화한 지난해로, 6년 만의 일이다.

가장 큰 원인은 탈원전 정책으로 연료 비중이 변화한 결과다. 원전 가동을 줄이느라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등의 사용이 늘어났다. 재생에너지의 경우에도 지난해 1㎾h당 발전단가가 원전보다 3배나 비쌌다고 한다. 김종갑 한전 사장은 “콩(원료)보다 두부(전기)가 싸다”는 표현으로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정부에 대해 “굳이 왜 값비싼 콩을 쓰라고 하느냐”고 항의해야 옳다.

잘못된 정책을 고집함으로써 비싼 연료의 사용이 늘어나는 데도 요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이 애초부터 잘못됐다. 정부가 탈원전 모범사례로 꼽는 독일에 있어서도 가정용 전기요금이 2010년 이후 25%나 치솟아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편에 속한다. 요금을 올리지 않고 버티다가 다음 정부에 떠넘기겠다는 속셈이 아니라면 시장바닥의 두부장수들도 이해하기 어려울 법하다.

정부는 이번 개편안에 대해서도 “한전 내부의 결정에 불과하다”며 요금인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2022년까지 요금을 안 올리겠다”고 약속했으므로 민심의 반발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내년 4월 총선까지 기다렸다가 하반기에 슬그머니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꼼수를 동원해 미봉할 것이라는 얘기다. 잘못된 정책은 빨리 수정하는 게 옳다. 더 늦기 전에 에너지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전기요금 개편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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