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조작국 찍힐라…속절없는 환율하락에도 두손 놓은 외환당국

원다연 기자I 2020.12.13 09:00:00

1100원선 깨진 원·달러, 지지선 1080원대까지 낮춰
방치하자니 수출타격, 개입하자니 환율조작국 우려
"지속 개입 어렵고 弱달러 기조서 효과도 의문"
"개입 경계감은 여전…1050원까지는 추가 하락"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지지선을 빠르게 낮춰가는 원·달러 환율의 하락 추세에 외환당국의 고민이 깊다. 두고 보자니 코로나19 상황 속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수출 타격이 걱정이고 적극 개입에 나서기엔 이미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어 운신의 폭이 넓지 않아서다. 미국이 지정해 놓은 무역흑자 기준을 넘어선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 지정 직전 단계에 와있다.

◇1100원 아래로 내려온 원·달러…개입 주춤하는 외환당국

지난 11일 원·달러 환율은 1090.30원으로 소폭 상승 마감했다. 이달 첫째주 24.40원 급락한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는 다소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다만 2년반만에 1100원대 밑으로 내려선 뒤 지지선을 1080원까지 빠르게 낮추며 하락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일 2년 6개월만에 1100원대가 깨지며 1000원대에 진입한 원·달러 환율은 다음날도 하루 새 14.90원이 급락하며 1080원 눈앞까지 내려섰다.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에 코로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우호한 우리나라의 경제 여건에 기댄 원화 강세 베팅이 더해지며,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빅피겨(큰 숫자) 1100원마저 속절없이 뚫렸지만 당국이 관망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하락폭을 더욱 키웠다.

지난달 중순 원·달러 환율이 1110원 밑으로 내려서자 강한 구두개입에 나섰던 것과 비교됐다. 지난 18일 원·달러 환율이 1103.80원까지 내려서자 1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잇따라 “환율 변동이 과도하다”고 경고에 나섰다. 이에 당일 원·달러 환율은 11.80원이 급등하며 다시 1110원대로 올라섰다.

△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그러나 이달 하락 국면에서는 이같은 개입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당국이 지속적으로 개입에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자유로운 움직임에 따른 환율 변동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뒷받침할 명분이 없는 데다 미국은 이미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 직전 단계인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해 모니터링하고 있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해서다.

미국은 양국간 교역규모가 400억달러 이상인 주요 교역국가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환율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미국의 종합무역법과 교역촉진법에 근거해 미국은 모니터링 대상 국가 중 지난 12개월간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달러 이상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가 2% 이상 △외환순매입액이 GDP의 2% 이상 6개월 이상 지속이라는 세가지 조건에 모두 해당되면 심층분석대상국(소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은 해당 국가에 대해 환율 저평가 시정을 요구하고, 1년이 지나도 개선되지 않을 경우 미 기업의 투자 제한, 해당국 기업의 미 연방정부 조달계약 체결 제한, 국제통화기금(IMF)에 추가적인 감시 요청 등의 구체적인 제재에 나서게 된다. 미국이 가장 최근 내놓은 지난 1월 환율보고서(2019년 6월 기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는 대미 무역흑자와 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기준을 충족해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돼 있다.

국제무역에서 불공정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환율조작을 모니터링한다는 취지인 만큼 원화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달러를 매수(원·달러 환율 상승)하는 개입은 민감한 관찰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한 외환시장 참가자는 “달러 약세 환경이 지배적이고 원화 자산에 대한 매력도가 부각돼 환율이 하락하는 흐름으로 당국이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기엔 명분이 부족하고 개입 효과도 의문인 상황”이라며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에 순매수액 제한도 있는 만큼 당국이 계속 개입에 나서긴 어렵다”고 했다. 한은이 지난 2월 내놓은 ‘우리나라 외환시장 오퍼레이션의 행태 및 환율변동성 완화 효과’에 따르면 외환당국이 1억달러 규모의 오퍼레이션(미세조정)에 나설시 환율 변동성이 0.003%포인트 완화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그 효과는 1~2개월 단기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재무부 환율보고서의 심층분석 대상국 포함요건 평가결과. (자료=미 환율보고서)
◇수출기업 마이너스 손익 수준 도달…“1050선에서 속도조절할 것”

환율의 급격한 하락세에 수출 기업은 울상이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아 원화로 바꾸는 수출 기업 입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하락(원화 가치 상승)하면 그만큼 매출과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환헤지가 쉽지 않은 중소 수출기업에 타격이 크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달 801개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은 1133원, 대기업의 경우 1126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환율이 이미 수출기업의 수익성에 영향을 줄만큼 내려선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26일 “수출에는 환율 이외에 다른 요인도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도 “단기간의 급락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려하고 있고 기업들이 또 다른 불확실성은 안게되는 것이므로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율 급락이 재현되면 당국이 언제든 다시 개입에 나설수 있다는 경계감은 여전하지만 속도 조절에 그치며 원·달러 환율의 하락 흐름 자체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오창섭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하락은 주로 달러화 약세에 기인하는데 내년 세계경제 회복국면, 미 대통령 취임 이후 경기부양책 이슈는 달러화 약세를 강화할 수 있는 요인”이라며 “국내 수급여건상으로도 무역흑자 확대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 증가로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하겠지만 1050원 수준에 근접할 경우 수출기업 환율 부담 등에 하락 속도는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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