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사진·60)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24년 소비 시장에서 가장 주목할 가치로 ‘시간’을 꼽았다. 앞으로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해가고 있지만 오히려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역량 또한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인간 또한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점점 더 완벽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완성도 낮은 AI, 인간다움으로 마침표 찍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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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2008년부터 매년 이듬해 소비시장에서 주목할 트렌드를 주요 키워드로 정리해 ‘트렌드 코리아’로 출간하고 있다. 매년 새해의 12간지 해당 동물을 통해 책의 부제를 정한다. 김 교수가 용띠 해인 2024년 부제로 정한 것은 ‘드래곤 아이즈’(DRAGON EYES, 용의 눈)다. “인공지능의 시대, 가장 인간다운 역량으로 ‘화룡점정’하라”는 의미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이벤트였습니다. ‘트렌드 코리아’도 AI를 활용해 보려고 했습니다. 다만 AI가 결과물을 민첩하게 만드는데 적절할지 몰라도 여전히 완성도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AI를 이용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결과물을 완성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024년을 설명하는 타이틀을 ‘화룡점정’으로 정한 이유입니다. 결국 사람이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24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제일 먼저 내세운 것은 ‘분초사회’다.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을 의미한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와 유연근무 등을 경험하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제 젊은 세대는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직장과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소비 시장도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오래 머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 인문학적 역량 더 중요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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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디지털 디바이드’(디지털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는 계층과 이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계층 간의 격차가 커지는 현상)보다 ‘아날로그 디바이드’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면서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와이파이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지만 박 사장(이선균)의 아들은 정원에서 캠핑하고 장난감 활을 쏘며 논다”며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격차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육각형인간’도 눈길을 끄는 키워드다. ‘외모, 학력, 자산, 직업, 집안, 성격’ 등 육각형 그래프에 딱 맞는 완벽한 인간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가 주목하는 부분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흔들리는 사회를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이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과거의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처음부터 완벽한 ‘육각형인간’이 젊은 세대가 선망하는 인간형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웹소설에서도 고진감래의 서사가 줄어들고 환생, 빙의 등을 통해 완벽한 인물로 거듭나는 서사가 늘어나고 있다”며 “‘육각형인간’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상대적 비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키워드”라고 설명했다.
◇완벽 추구하는 사회, 결혼·출산율 문제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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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김 교수는 ‘최저가’보다 ‘최적가’가 더 중요해지는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 재미만을 좇으면서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도파밍’, 영화·드라마를 넘어 산업 전반에서도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하는 ‘스핀오프 프로젝트’, 특정 인물이나 콘텐츠, 유통 채널을 따라 소비하는 ‘디토소비’,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지역 또한 유연한 도시로 변해가는 ‘리퀴드폴리탄’, 사회적 약자를 넘어 모두에게 필요한 ‘돌봄경제’를 2024년 소비 트렌드 키워드로 꼽았다. 김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는 토정비결 같은 예언서가 아니다”라며 “내년의 중요한 소비 흐름을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한 체크리스트로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