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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사라지는 시대…서울 도심서 ‘양봉’ 배운다

황병서 기자I 2023.03.24 06:00:00

노원구청, 덕릉고개서 매년 양봉학교 열어
양봉 배우러 20대 취준생부터 70대까지
“도시 인근 녹지 활용 가능…소규모 그룹으로 시작하라”
“건강한 꿀벌 키워야 좋은 꿀 수확, 학교서 직접 배워요”

10년 차 양봉가 권오근(63)씨가 지난 21일 서울 노원구 덕릉고개 양봉장에서 학생들에게 벌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황병서 기자)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10여 년째 양봉 일을 해온 양봉가 권오근(63)씨는 아크릴 유리 소재로 덮인 직사각형 모양의 벌집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벌에 쏘일 걱정 없이 벌집을 관찰할 수 있도록 권씨가 손수 만든 교보재였다. 그는 “이 벌집 한 통에는 여왕벌, 일벌, 수벌 등 세 종류의 벌이 있어야 시스템의 균형이 유지된다”며 “일벌들이 정육각형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여왕벌들이 새끼를 낳고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메모하고 촬영하기에 바빴던 학생들은 “여왕벌보다 일벌이 더 중요하네”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1일 서울 노원구 덕릉고개 양봉장. 50~70대 중장년층에 20대 취업준비생까지 20여명이 ‘도시 양봉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다. 벚꽃꿀 채밀(꿀 뜨기) 방법부터 밤꿀 채취, 진드기 약처리, 월동 포장방법 등 다양한 양봉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외곽이긴 하지만, 양봉에 관심 있는 도심인들에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은 학교다.

‘도시 양봉학교’는 노원구청에서 지난 2015년부터 매년 운영 중으로, 벌써 200여명이 수료했다. 올해는 지난 7일 개강해 10월 말까지 매주 수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8개월간의 교육과 실습으로 채취한 꿀은 노원푸드마켓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140kg의 꿀을 채취해 기부했단 게 노원구청의 설명이다.

도시 양봉은 ‘꿀벌 없는 세상’ 위기가 고조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최근 기후이상 등으로 꿀벌 집단폐사를 겪으면서 작황이 나빠져 농작물 가격이 오르는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경고가 다시 회자됨에 따라, 꿀벌을 지키면서 경제활동도 하려는 이들이 양봉학교를 찾고 있다.

지난 2019년부터 5년째 양봉 일을 배우는 70대 남성 정모씨는 “은퇴 후 교외지역에서 전원생활 즐기려고 계획 중인데 양봉 일을 하면 소일거리가 되기도 하고 잘하면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아 배우고 있다”며 “올해에는 직접 벌집 한 통을 사서 체험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인 김모(28)씨는 “양봉 일이 어떤 일인지 궁금해서 들으러 왔다”며 “벌집 한 통 가격이 30~50만원이라니 제 입장에선 좀 비싸서 당장 양봉 일을 시작하진 못할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양봉가이자 이 학교 강사인 권씨는 흔히 생각하는 시골의 깊은 산속 아닌, 도시 근교 녹지에서도 벌꿀 생산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 또한 처음에 5명이서 이 인근에서 도시 양봉을 시작했다”며 “구매해야 할 것들의 비용을 고려하면 소규모 그룹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양봉에서 가장 중요한 건 ‘꿀 수확보다 꿀벌에 집중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꿀을 통한 수익 창출에 몰두한 나머지 인위적인 먹이인 설탕물 등에만 의존하면 벌들이 병충해에 약해진다”며 건강한 꿀벌을 키우려면 설탕물은 적절히 활용하고, 주변 환경의 꽃가루 등의 보조밀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건강한 벌들한테서 태어난 새끼 벌들이 세대교체를 이뤄나가야 폭발적으로 벌의 개체 수가 많아질 수 있다”며 “꿀을 얻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만 해도 기후 환경이 남쪽과 북쪽이 너무 다른데 남쪽 지역에서 찍은 유튜브를 보고 수도권에서 양봉하려 하면 벌들이 한순간에 죽을 수도 있다”며 “유튜브 등을 통해서보다는 양봉학교를 통해서 직접 배우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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