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가계부채·디플레이션·수출 위축 우려 ‘3중고’

김보리 기자I 2014.12.22 06:15:00

WSJ "유가 하락,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 초래"
엔-원 환율, 80년대와 반대.."고부가가치 품목 피해클 것"

[이데일리 김보리 조진영 기자] 신3저(저성장·저물가·엔저)로 한국 경제가 시름에 잠겼다. 1986~88년 당시 3저(저유가·저금리·저달러)로 3년 연속 두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한 때 성장의 전제조건이 됐던 유가하락이 이제는 대외적으로 경제를 옭아내는 덫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에너지 부문뿐만 아니라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돼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80년대 경기 호재로 작용했던 대외변수들이 최근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유가하락, 성장률 상승보다는 디플레 우려 부추길 것

‘유가하락=고성장’은 옛말이다. 대외적으로 저유가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쇼크가 확산돼 신흥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 1997년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가 급락이 국내총생산(GDP)상승보다는 물가하락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경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유가급락이 글로벌수요부진과 맞물리면서 그 효과를 제약하고 유가급락에 따른 물가 하방위험에도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가급락이 소비자물가상승률(CPI)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CPI를 구성하는 요소 중 연료제품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내년 CPI 전망치를 2.9%에서 0.9%로 큰 폭으로 하향 수정될 것이라고 봤다.

저물가는 디플레이션 우려도 부추길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가하락이 경기회복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공급 확대에 따른 것이어야 하지만 최근에는 수요 부족에 따른 것으로 경기회복 요인이 되지 못한다”며 “가계의 유가 하락으로 줄어든 절약분이 소비로 연결될 것이란 공식은 그저 교과서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 저금리→가계부채↑, 주머니 사정 더 궁핍

저금리가 경기 선순환 요소가 되려면 부동산과 증시로 돈이 몰리면서 경기 혈관이 돌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저금리는 가계부채의 뇌관이 되고 있다. 경기 부양책의 그림자였던 가계부채에 마침내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저금리로 부채가 늘면 가계 소비력은 더 떨어져 살려야 할 내수를 오히려 위축시킨다. 가처분소득의 반 이상을 부채상환에 이미 쓰고 있는 저소득층의 경우, 저금리로 빚이 늘면 상대적 궁핍은 더욱 깊어진다. ‘저금리→가계부채 증가 및 전셋값 급등→민간 소비여력 감소 →내수둔화→경기부양 위한 저금리 기조 지속’ 등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8월 이후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일괄 상향되면서 가계부채의 심각성이 더욱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가계대출잔액(모기지론양도분 포함)은 554조3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9000억원이 늘었다. 금융사의 수신과 대출 등 자금흐름에 대한 속보치 성격인 이 수치는 월간 은행 가계대출 증가액으론 2008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다.

◇ 80년 호황 ‘엔고’ 덕…최근엔 ‘엔저’ 수출 동력에 타격

80년대 ‘3저 호황’당시에는 ‘엔고 저 달러’의 시기로 현재 ‘엔저 고 달러’와는 정반대 현상이다. 1985년 플라자 회의로 엔화는 초강세를 보였고,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수출에 원동력이 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년 넘게 지속된 엔저의 피해가 가시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 11일 “엔저가 심해지면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국내 기업이 분명히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엔저에 따른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타격, 불이익에 대해서는 간과할 부분이 아니라 미시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도 “정유의 경우 일본과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고부가가치 품목에서 경합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며 “자동차의 경우 완성차는 가격 인하 등 일본 중소형 자동차 업체의 공격적 마케팅 탓에 부품은 일본제 부품의 가격 하락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 통화정책 vs 경제 구조개혁, 신3저 타개책은?

신3저로 한국경제가 활용할 카드가 줄어들면서 기댈 곳은 통화정책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성 교수는 “유가하락, 저금리, 엔저 해결책은 통화정책밖에 없다”며 ”한은이 금리 인하를 통해 디플레이션이랑 싸우면서 물가의 하락 기대를 저지해야한다“고 언급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도 “유가만이 아니라 물가 전체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인하해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통화정책보다는 구조개혁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에만 의존하기 보다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며 “아베노믹스가 주춤한 것도 통화정책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9일 재정관리협의회를 주재하면서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구조개혁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경제 체질 개선을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