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무서워요”…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들

박진환 기자I 2023.05.09 06:00:00

민원인위법행위 2019년 3.8만건서 2021년 5.2만건으로 급증
세종·충남 등서 악성 민원인의 흉기 난동·폭행 등 사건 계속
지자체들, 악성민원에 대응수위 높였지만 근본적 대안 한계
공무원노조연맹 “행안부 소극적 대처 일관…정부가 나서야”

세종시와 세종경찰서가 4월 18일 시청사 민원실에서 민원인 응대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폭언·폭행 등 비상상황에 대비한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세종시 제공)


[대전·세종=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전국적으로 민원 담당 공무원들을 향한 폭언과 폭행이 끊이질 않으면서 각 기관마다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 내 민원 부서에서는 악성 민원인들의 갑질과 불법적인 행태가 도를 넘어섰지만 그간 선출직 단체장들이 이들에게 관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대민 부서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기피 부서로 전락했다. 행정안전부, 대전시 등에 따르면 폭언·폭행·성희롱 등 민원인의 위법 행위는 2019년 3만 8000건에서 2020년 4만 6000건, 2021년 5만 2000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대전에서도 대전시와 5개 자치구에 접수된 민원인의 위법 행위는 2020년 2306건에서 2021년 4245건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피해 유형은 폭언·욕설이 80%로 가장 많았고, 협박과 폭행, 성희롱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 최근 충남 천안의 한 파출소에서는 촉법소년이 경찰관을 발로 차고 욕설을 퍼붓는 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지며,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앞서 지난달에는 ‘시장이 자신의 연락을 피한다’며 충남 논산시청 비서실에 찾아가 흉기를 휘두른 5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또 같은달 세종시 조치원읍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생계급여 신청에 불만을 품은 40대 민원인이 흉기 난동 벌여 공무원 등 3명이 다쳤다. 당시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민원인 A씨는 생계·의료비와 주거급여비를 신청했지만 ‘심사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는 직원 얘기를 듣고 말다툼 끝에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에도 충남 아산시 한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에너지 바우처 신청을 하러 온 50대 민원인이 공무원 업무공간으로 들어가 직원 얼굴을 가격하는 일이 있었다.

악성 민원들의 위법 행위가 늘면서 육체·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는 공직자들도 늘고 있다. 현행법상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을 폭행 또는 협박한 사람(공무집행방해)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위험한 물건으로 폭행해 상해(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가 발생하면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러나 2021년 한해 동안 1심 판결이 선고된 공무집행방해 사건(6954건) 중 실형은 17.8%(1242건)에 그쳤다. 공직계 내부에서도 악성 민원에 대해 형사 고발 등 강경한 대응보다는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이어졌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공무원까지 발생했다. 최근 경기 구리시에서는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하는 1년 차 공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이 새내기 공무원은 사고 전날 근무지에서 민원인을 상대한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악성민원인 탓에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다가 휴직을 하는 공무원도 늘고 있다.

악성 민원이 늘면서 지자체들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각 지자체들이 악성민원 발생에 대비해 경찰과 합동으로 비상 대응능력 구축을 위한 모의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음성 녹음과 전·후방 촬영이 가능한 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인 ‘웨어러블 캠’ 도입 등을 서두르고 있다. 또 민원담당 공무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하는 등 제도적 보호조치도 마련하고 있다. 경기 안산시는 악성 민원으로부터 공직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민원업무 담당 공무원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 시행 중이다. 이 조례는 악성 민원 피해 공직자에게 심리상담, 의료비, 휴식 시간·공간, 법률상담·소송 등을 지원하고, CCTV·비상벨 설치와 안전요원 배치 등 공직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남시와 평택시도 유사한 내용의 조례를 제정해 시행 중이다. 행안부도 공무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민원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영상정보처리기기와 호출장치, 안전요원의 배치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악성민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사고발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노총 공무원노동조합연맹은 “악성 민원인에 의한 민원처리 공무원에 대한 위협, 위해 행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전국의 민원행정 현장에서 수많은 민원담당 공무원이 음으로 양으로 악성민원인에게 지속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행정안전부 등 담당부처는 악성민원인에 대한 소극적인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전의 한 자치구 민원 담당자는 “사회·복지, 세무 등의 대부분의 민원부서에서는 하루에도 수차례 폭언은 물론 욕설에 물건을 집어던지는 민원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제한 뒤 “육체·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지만 간부들은 ‘네가 참아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어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