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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관' 삼일로창고극장 "극장장·예술감독은 없습니다"

장병호 기자I 2018.06.21 05:30:00

국내 첫 민간극장이자 연극 메카
서울시 10년 임대…다시 문 열어
예술인 참여한 민간 운영위 구성
"외부에 문 활짝…정체성 구축할 것"

22일 재개관하는 삼일로창고극장 전경. 서울시는 기존 소극장과 함께 극장 앞 상업시설을 전시실과 리모델링해 재개관을 준비해왔다(사진=서울문화재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습니다.” 명동성당과 영락교회 사이 남산으로 가는 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문구가 있었다. 국내 최초의 민간극장인 삼일로창고극장에 걸려 있는 간판이었다.

◇젊은 연극인 메카로 재탄생

1975년 ‘에저또 소극장’으로 개관한 삼일로창고극장은 70년대 소극장 운동을 이끌던 연극의 메카였다. 배우 추송웅의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을 필두로 다양한 실험극이 무대에 오르며 한국 연극계의 중요한 획을 새겼다. 그러나 여러 차례 개폐관을 거듭하던 삼일로창고극장은 2015년 10월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폐관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삼일로창고극장이 이제 젊은 연극인과 예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연극의 메카로 재탄생한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은 오는 22일 삼일로창고극장 재개관식을 열고 극장의 새로운 출발을 알린다. 삼일로창고극장은 서울시가 지난해 건물주로부터 임대를 결정하면서 부활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을 위임 받아 남산예술센터와 함께 운영한다.

20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서영관 서울시 문화정책과장은 “서울시는 40년간의 추억과 역사성을 보존하기 위해 2013년 12월 삼일로창고극장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며 “2015년 10월 폐관 위기를 맞아 극장 운영 활성화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을 한 끝에 2016년 기존 극장과 극장 앞 상업시설을 모두 합쳐 공연예술창작지원조성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 5월 서울문화재단에 민간 위탁 운영하기로 결정했다”고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건물주와 10년 장기임대계약을 맺었다.

삼일로창고극장 운영위원인 이경성 연출(가운데)이 20일 서울 중구 삼일로창고극장 스튜디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운영위원 기획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성화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전윤환 연출, 이경성 연출, 서영관 서울시 문화정책과장,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사진=서울문화재단).


재개관과 함께 주목할 부분은 다른 공연장과 달리 극장장이나 예술감독을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젊은 연극인과 예술인을 주축으로 하는 운영위원회가 삼일로창고극장의 운영을 책임진다. 1기 운영위원회는 우연(47)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을 비롯해 박지선(46) 프로듀서그룹 도트 크리에이트 프로듀서, 오성화(45)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대표, 이경성(35) 연극연출가, 전윤환(32) 연극연출가, 정진세(38) 극단 문 작가로 구성됐다.

우연 극장장은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해 2015년 폐관할 때까지 민간 연극인이 자체적으로 운영해온 극장”이라며 “이러한 극장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민간 연극인과 예술가가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꾸렸다”고 설명했다. 이경성 연출은 “극장의 문을 외부에 열어 놓으면서도 동시에 극장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나누고 있다”며 “젊은 예술가를 중심으로 완성된 작품만 선보이는 게 아니라 작품이 제작되기까지의 여러 주제와 이슈를 함께 나누는 극장으로 운영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운영위원 임기는 2년이며 2019년 말 2기 운영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극장 운영은 운영위원의 기획공연과 대관공연으로 꾸릴 예정이다. 대관공연도 운영위원회가 직접 선정한다. 이경성 연출은 “대관작은 대학로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 삼일로창고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심으로 선정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재개관 기념공연·전시도

재개관 기념공연과 전시도 진행한다. 1977년 초연 당시 4개월 만에 6만 관객을 돌파한 배우 추송웅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의 오마주 공연 ‘빨간 피터들’(6월 29일~7월 22일) 연작 시리즈를 무대에 올린다. 연출가 신유청의 ‘추ing_낯선 자’를 시작으로 연출가 김수희의 ‘K의 낭독회’, 안무가 김보람이 연출하는 ‘관통시팔’, 연출가 적극의 ‘러시아판소리-어느학술원에의보고’를 차례로 선보인다. 재개관 기념전시로는 삼일로창고극장의 모태가 된 극단 에저또의 1966년부터 1977년까지를 조명하는 아카이브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6월 22일~9월 22일), 1975년 첫 개관 당시 개막작이었던 ‘새타니’에서 영감을 받은 설치전시 ‘언더홀’(6월 22일~7월 21일) 등을 진행한다.

재개관일인 22일에는 기념행사도 마련한다. 70년대 데이트를 하면서 ‘빨간 피터의 고백’을 봤던 50대 부부,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연극을 본 뒤 희곡을 쓰다 등단한 시인, 삼일로창고극장 공연 포스터를 모으던 여고생 등 삼일로창고극장에 대한 추억이 있는 관객이 참여하는 릴레이 토크를 연다. 이에 앞서 22일 오후 3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일반 시민이 극장 곳곳을 살펴볼 수 있도록 개방한다. 23일에는 70년대 당시 30대였던 극작가 윤대성, 윤조병, 이봉재, 김용락의 대본을 지금 30대인 연출가 송정안, 채군이 재해석하는 낭독공연을 진행한다.

삼일로창고극장 내부 모습(사진=장병호 기자 solanin@).
삼일로창고극장 개관 기념 전시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음니다’(사진=장병호 기자 solanin@).


◇삼일로창고극장의 개·폐관 역사

- 1975년 연출가 방태수가 이끄는 극단 에저또 단원들이 직접 무대를 파고 건물을 보수해 ‘에저또 소극장’(이후 에저또 창고극장으로 변경)으로 개관

- 1976년 정신과 의사 유석진이 극장을 인수하고 연출가 이원경이 극장 운영을 맡아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두 번째 개관

- 1983년 배우 추송웅이 인수해 ‘떼아뜨르 추 삼일로’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개관

- 1986년 극단 로얄씨어터(대표 윤여성)가 인수해 극장 이름을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다시 변경하고 기존 아레나 무대를 프로시니엄 무대로 개조해 소극장 실험을 지속

- 1990년 폐관 이후 김치공장, 인쇄소 등으로 사용

- 1988년 창작극 전문 작가들이 모여 만든 극단 창작마을(대표 김대현)이 인수해 ‘명동 창고극장’ 이름으로 다섯 번째 개관

- 2004년 연출가 정대경(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이 인수해 ‘삼일로 창고극장’ 이름으로 운영하다 2015년 폐관. 1975년 폐관해 2015년 폐관할 때까지 총 279편의 작품을 공연

- 2018년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이 다시 인수해 재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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