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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민은 “지난달 화재 이후 바뀐 것은 현수막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재개발이 될 때까지 화재 예방과 관련, 아무런 계획이 없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마을 뒤쪽 대모산 진입로 있는 산불진화장비 보관함에는 소화기 10개와 삽자루 몇개 뿐이다.
◇잇따른 화재에도 환경 개선 ‘뒷전’…화재위험 여전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80년대 후반,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전후로 도심에서 밀려난 영세민들이 하나둘 구룡산 자락에 모여들었다. 1000여 세대가 둥지를 틀면서 거대한 판자촌인 ‘구룡마을’이 생겼다. 전체 면적이 26만 6000㎡로 축구장 37개가 넘는 크기다.
소방당국이 화재취약지구로 관리하고 있지만 최근 8년간 10번 넘게 불이 났다. 지난달 29일 오전 주민 김모(69)씨의 실화로 7지구에서 화재가 발생, 29가구(빈집 3곳 포함) 40여명이 터전을 잃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화재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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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집 사이 폭이 채 1m도 안 될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룡마을 가구 대부분은 비닐 천막이나 합판, ‘떡솜’으로 불리는 보온용 솜 등 가연성 물질이 가득하다. 또 인근 송전선에서 불법으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 도전용 전선이 많아 전기 합선 화재 위험도 높다. 주민 권모(75·여)씨는 “마을 자체가 오래된 집들이다 보니 불이 옮겨붙는 건 시간 문제”라며 “또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소방당국은 구룡마을이 무허가 주택지구인 탓에 책임자를 지정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난처해하고 있다.
119 개포 안전센터 관계자는 “오래된 건축물이 서로 바짝 붙어 있어 화재시 방어벽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크다”며 “소방 시설 설치나 유지는 건물 관계자와 소유자의 관리가 필요한데 무허가 판자촌에선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재개발 방식을 두고 서울시와 각을 세우던 강남구청도 재개발 방식이 확정되자 아예 손을 놓은 모습이다.
지난 2월 대법원 판결로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은 강남구가 주도하는 ‘100% 수용·사용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에 따라 연내 실시계획인가 고시와 주민 이주를 마무리 하고 오는 2020년까지 총 2600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촌(村)이 들어설 계획이다.
강남구청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예산 문제로 구룡마을 내 밀집 지역만 전기와 가스를 점검했는데 지난달 화재 이후 전체적으로 점검을 할 계획”이라면서도 “별도로 마련한 화재 방지 대책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