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신화는 삼성의 고집 덕…기업가정신 더 절실해져"

김정남 기자I 2019.01.01 06:00:00

[신년인터뷰]②이경태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역대 정권마다 산업정책 세웠지만 성과는 미미”
"소득주도성장..과잉이념이 현실무시로 이어져"
"대기업 발전해야 중기도 동반성장..피해의식 벗어야"

이경태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한국은 갈수록 정치적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정말 큰 문제”라고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1980년초 어느날. 경제기획원이 급히 반도체 관련 회의를 소집했다. 안건은 삼성의 반도체 공장 건설에 필요한 외자 도입 건. 당시에는 기업이 거액의 해외 차관을 들여오려면 정부 승인이 필요했다.

“그때 경제기획원 차관보가 그러더라고요.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는데 이게 과연 되겠어요? 미국과 일본이 꽉 잡고 있는데,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겠어요?’ 라고요.”

산업연구원 3실장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던 이경태(71)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회고다. 회의 분위기는 부정적이었다. 기업이 해외 차관을 들여와 사업을 벌였다 망하면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데, 그런 리스크를 질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했다.

하지만 삼성 또한 확고했다. “리스크가 있지만 성공할 수 있다”며 버텼고, 결국 허가를 받아냈다. 삼성의 뒤를 이어 현대와 금성(현 LG)도 이 위험천만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반도체 코리아’가 싹 트지 않았다면 지금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왔던 이 전 원장과 신년 인터뷰는 반도체 얘기로 시작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이데일리 사옥에서 이 전 원장을 만났다.

◇“역대 정권마다 산업정책 세웠지만 성과는 미미”

-1980년대 초 반도체 회의는 어땠나.

△정부는 무모하다고 봤고 개인적으로도 당시 정부의 판단이 타당해 보였다. 그런데도 삼성은 정부의 만류에도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이 이미 섰더라. 당시 무모해 보였던 삼성의 반도체 사업 도전은 ‘기업가 정신’, ‘창조적 파괴’ 같은 말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과는 달랐던 것 같다.

△그렇다. 박정희정부 때는 민간이 엄두도 못 내던 중화학공업을 정부가 주도했다. 반도체는 민간 주도였다. 전두환정부 들어 김재익 전 경제수석 같은 자유시장경제주의자가 등장한 영향도 있었다.

-김대중정부 이후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많다.

△산업정책은 가장 미시적인 정책이다. 교과서에도 안 나온다. 역대 정권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해 얘기했고 정책도 세웠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왜 그런가.

△제가 고교 때인 1960년대 초에 한 학년에 총 9학급이 있었는데, 그 중 문과 반은 3개밖에 안 됐다. 이과의 인기가 그만큼 높았다. 정부의 정책 방향 전반이 미래 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뿐만 아니다. 산업정책은 금융, 기술, 노동 등이 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가능하다. 범정부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각 정부 부처마다 이해관계가 다 달라서 따로 논다. 중심이 돼야 할 산업통상자원부가 힘이 없다. 교육부 관료들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교육과정을 바꾸자면 바꾸겠나. 남 얘기로 들을 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규제를 확 풀어서 기업이 마음놓고 뛰놀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규제 하나 푸는 것부터 부처간 입장이 다르니 잘 안 될 수밖에 없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결국 대통령이 비전을 갖고 방향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청와대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하면 안 된다. 실제 추진하는 건 각 부처에 모두 맡기되, 방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경태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1970년대 박정희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을 시작으로 한국 산업정책의 현장을 지킨 산증인이다. 사진=방인권 기자


◇“韓, 정치적으로 가장 편이 갈려진 나라”

-한국은 정치적 대립도 리스크다.

△유럽의 경험을 보자. 1800년대 이후 나온 자유주의와 마르크스 이후 나온 사회주의는 지금도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는 이념적으로 가게 돼있다. 하지만 유럽은 좌우 극단으로 갔던 시행착오를 겪은 후 누가 집권하든 중도 성향으로 가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독일식 연립정부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과거부터 토양 자체가 자유주의인 나라다. 한국을 보면, 세계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편이 갈려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옳다는 식이다.

-보수든 진보든 다 마찬가지다.

△그렇다. 문재인정부는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 이어) 소위 세 번째 진보정부인데, 그 중에서도 좌파 색채가 가장 강하다. 그 이념 아래 대한민국을 바꿔보겠다는 의지도 매우 강하다. 그러다보니 최저임금 인상 같은 무리한 정책이 나왔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어떻게 보나.

△소득을 분배해 성장을 하자는 건 경제이론에 없다. 문재인정부 들어 소득이 몇% 늘면 성장이 몇% 더 되더라는 식의 실증적으로 입증한 수치를 본 적이 없다. 과잉 이념은 현실 무시로 이어진다.

-요즘 대통령의 경제관이 바뀐 것 같다.

△대통령도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식하게 됐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아직은 지켜봐야 한다. 이념이 강한 사람은 쉽게 양보를 못하는 법이다.

-최근 카풀 도입 논란이 화제다.

△1980년대 초 대외개방 논란이 떠오른다. 전두환정부 때인데, 김재익 전 경제수석 같은 개방론자들이 수입 자유화를 통해 국내 시장에서도 외국기업과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입을 제한하면 온실 속 화초가 된다는 논리였다. 당시만 해도 보호무역에 가까웠다. 그때 개방 반대론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댔지만 결국은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던 거다.

-결론이 어떻게 났나.

△결국 타협을 했다. 1983년 수입자유화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개방의 방향성을 지키되, 5년의 시간을 준 것이다.

-한국은 차량공유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미국에 갈 일이 있을 때 우버를 이용한다. 매우 편리하다. 요즘 한국은 유럽보다 더 사회적 합의를 중시한다. 요즘 상황 같으면 차량공유 서비스의 도입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느 정치인이 할 수 있겠나. 지금은 택시기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원격의료 같은 고급 서비스업도 다 마찬가지다.

-이것 또한 정치가 리스크다.

△한국은 갈수록 정치적 의사결정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 여론에 너무 왔다갔다 한다. 정말 큰 문제다.

-기업가정신도 약해지는 것 같다.

△저도 그렇게 본다. 언제부터인가 사회 전반이 뭐든 한 번 해보자는 게 너무 약해졌다. 리스크를 짊어지려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헬 조선’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사회가 위축되다보니 남 탓이 많아졌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해야 하는데, 자꾸 사회 탓 나라 탓을 하는 풍조가 심해지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어디까지 책임 질 수 있겠나.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있다면.

△성장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도 더불어 잘 사는 국가를 만들려면 분배만큼 성장도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또 무엇이 필요할까.

△대기업집단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대기업이 발전해야 중소기업도 같이 발전할 수 있다. 대기업집단 스스로 고쳐야 할 점이 매우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기업집단만 혜택을 받았다는 것도 편협한 역사관이다. 규제할 건 규제하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풀 수 있는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

이경태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지난 24일 서울 중구 이데일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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