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금융시장 돋보기]ESG 공시 제대로 정착시키려면

이준기 기자I 2024.07.01 06:25:00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부가 발표한 ESG 공시 기준서 초안을 두고 논의가 무성하다. 경제계는 공시가 경영적으로 부담이 되며 실제 적용을 위한 디테일의 보완을 지적하고 있다. 자본시장은 충분한 정보 제공과 투명성 제고 관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이다. 대체로 글로벌 표준과 공시 당위성, 산업계 수용성이 고루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면서 사실상 적용 대상과 적용 시기 관련 정책 판단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금융의 흐름을 바꾸겠다는 파리협정 2조의 목적 달성 관점에서 보면 기후 공시규제는 핵심적인 정책수단이다. 대출 심사와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불균형이 큰 상황에서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에 필요한 기후금융은 조달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EU 집행위 등 글로벌 회계감독당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국내 기후공시 기준안이 마련된 것은 몇 년 전 2050 탄소중립 선언만큼이나 큰 제도적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기후 공시규제는 비록 공시 대상이 되는 ‘중대한’ 기후위험과 기회에 대한 판단을 회사 자율에 맡기면서도 공시의 신뢰성과 투명성, 비교가능성을 담보해야 하는 어려운 정책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후공시 규제는 규제체계 측면에서 몇 가지 추가적인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 기후공시 기준서만으로 규제가 완전할 수 없는 만큼 다른 기후금융정책, 특히 녹색분류체계(텍소노미)와 상호 보완성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공시 기준서는 회계 관점에서 공시 원칙과 기준을 담은 것으로, 무엇이 중대한 기후위험에 노출된 활동이고 무엇이 기후기회가 열린 활동인가 판단은 경제적으로 판단의 영역이다. 텍소노미는 녹색경제활동 여부를 경제적으로 판단하는 과학기반의 경제활동 분류체계로서 금융기관이 기후금융을 심사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이다. 기후 공시가 텍소노미나 전환금융과 결합될 때 기업의 기후 위험과 기회 공시가 금융시장이 필요로 하는 정보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EU는 지속가능금융 관점에서 텍소노미, 공시기준(CSRS), 지속가능금융공시규제(SFDR)를 상호작용하는 삼위일체(trinity)로 인식하고 있다. 텍소노미는 녹색경제활동을 과학기반으로 정의하고, 공시 기준서(CSRS)가 텍소노미에 부합하는 중대성 위험과 기회를 식별, 평가, 공시하며, 지속가능금융공시(SFDR)는 일반기업의 공시 사항을 토대로 해당기업을 편입한 금융상품의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요인을 공시하는 정합적인 규제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텍소노미의 경직성이 이슈가 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전환금융을 포함한 유연한 신호등분류체계로 발전하며 기후 공시의 신뢰성을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ESG 공시에 텍소노미 정보 공시를 포함하는 방안이다. 텍소노미가 녹색 관점에서 기업 활동을 가장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EU와 달리 개별기업의 텍소노미 채택과 정보 공시를 자율 영역으로 남겨뒀다. 공시 의무가 없다 보니 당연히 텍소노미를 채택할 유인도 약화된 상태이다. 기후 공시의 신뢰 제고를 위해 기후공시 의무화와 함께 텍소노미 중요 정보에 대해서도 공시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시점이 됐다. 산업계의 부담이 증가할 수는 있으나, 기후금융 확대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셋째 기후 공시 항목과 적용 시기를 일반기업과 금융회사에 달리하는 방안이다. 금융회사의 기후 위험과 기회는 자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닌 고객에게 제공한 금융서비스와 상품에 내재한 금융배출량(스코프 3)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일반기업과 달리 금융회사의 경우 스코프 3(금융배출량)는 의무공시 사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U는 지속가능성금융공시(SFDR)에서 이미 금융배출량 공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때 금융배출량 산출 과정의 특수성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금융배출량은 고객 기업이 제대로 된 배출량 정보를 공시할 때 정보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으므로 일반기업의 의무 공시 시점과 몇 년의 시차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는 EU처럼 상장기업 지속가능성공시와 별도로 기후금융 재원의 배분을 책임지는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가능금융공시(SFDR)라는 별도의 규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