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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전 현장에서 냉대받은 공론화위원회

논설 위원I 2017.08.29 06:00:00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손에 쥔 공론화위원회 일행이 어제 공사가 중단된 울주군의 건설현장을 찾았으나 현지 반응은 완강했다. 주민들은 길을 막은 채 일행의 버스 진입로를 터주지 않았다. 주민 몇 명은 아예 길바닥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의 원전공사 중단 방침에 대한 분명한 항의 표시다. 결국 실랑이 끝에 위원회 일행은 걸어서 현장에 들어가야 했다고 한다. 공론화위원회가 지난달 출범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첫 방문한 현장 분위기다.

이날 현장에 몰려나와 대치하던 사람들이 원전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의 의사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지 주민 가운데서도 원전 정책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뉠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도 원전공사 중단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위원회 측과의 면담에 기꺼이 응했다고 한다. 일반 국민들 사이의 견해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의 ‘원전 제로’ 정책이 본격 가시화된 이후 간헐적으로 실시되는 여론조사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이런 현상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법적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사업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시작됐으며,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서도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절차가 따라야만 한다. 공론화 작업으로 공사를 중단시킬 수 있는지가 의문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이 공사에 이미 1조 6000억원 규모의 공사비가 집행됐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전력 공급에 가장 큰몫을 차지하는 원전이 폐쇄될 경우에 대비한 장기적인 전력수급 계획도 감안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 일행이 어제 현장에서 주민들로부터 받은 상반된 반응은 현실 인식에서 확연히 갈라진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말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원회 나름대로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공정한 결론을 도출해내기가 어려울뿐더러 상대방을 납득시키는 데도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정부가 면밀한 사전 검토도 없이 밀어붙이는 바람에 공연히 민심이 찬반으로 대립하는 결과만 자초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론화위원회가 매우 어려운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찬반 여론이 더욱 분열되는 사태가 벌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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