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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1분은 12시가 아니다'…배민 김봉진, 명함 공개[오너의 취향]

전재욱 기자I 2022.07.27 06:30:00

배달의민족 유니콘으로 키우기까지 원칙 또 원칙
'명함=이름을 담는 함'…규율 중시하는 자율주의자
약속, 지키는 것보다 제때 지켜야…"어기면 태도 문제"
오피스에 자녀 이름 회의실 명명…"가족에 부끄럽지 말라"
자율속 원칙세워 직원 최고복지로 거듭난 `도서비 무제한`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우아한형제들과 광고대행사 HS애드 임원직이 교외로 야유회를 떠난 날이었다. 밤이 깊도록 속 깊은 얘기가 오갔다. 자리는 날을 넘겨서까지 이어졌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HS애드 직원 하나가 자리를 떴다. 모두 그가 잠자리에 드는 줄 알았다. 대답이 뜻밖이었다. “새벽 기도를 가려면 지금 일어서야 해서요.”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눈이 번뜩였다. 그의 시각에서 HS애드 직원은 산통을 깬 게 아니었다.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두 회사는 10년 가까이 합을 맞춰오고 있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창업자는 철저한 원칙주의자다. 우아한형제들이 지금까지 파격과 자율을 거름으로 성장해왔다는 평가를 받기에 의아할 법하다. 시장은 이걸 `허용된 변칙`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여태 사업을 하면서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우아한형제들은 회사 회의실을 임직원 자녀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 내용을 설명하는 김봉진 창업자.(사진=우아한형제들 유튜브 캡처)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에는 그의 원칙주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2시1분은 12시가 아니다`는 상징적이다. 으레 회사 사장이 직원에게 하는 `지각하지 말라`로 읽으면 겉들은 것이다. `약속을 지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핵심을 파악한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건, 제때 지키는 것이다. 약속 상대가 동료이든 스스로이든 마찬가지다. 김봉진 창업자는 지난 4월 사보 격인 ‘배민다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수시로 하는 약속의 상징은 회의 시간이다. 약속이라는 걸 몇 시에 하자고 만들었는데, 어긴다는 것은 동료에 대한 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회의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건 긴장된 상태에서 무엇을 할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사진=우아한형제들)
우아한형제들 오피스 공간에서도 김봉진 창업자의 원칙이 드러난다. 사무실을 롯데월드타워로 확장하면서 회의실마다 아이 이름을 붙였다. 실제로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의 자녀 이름에서 따왔다. 서체는 자녀의 글씨체를 그대로 가져왔다. 의식은 공간을 지배하고, 공간은 의식을 지배한다. 의식과 공간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와중에 자식 둔 부모가 행동을 허투루 할 리 만무하다. `가족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가 강조하는 또 다른 원칙이다.

우아한형제들이 가족을 볼모(?)로 직원을 의식화하려는 걸로 보면 착각이다. 김봉진 창업자는 더 한다. 두 딸의 이름에서 따와 `한나체`(2012년)와 `주아체`(2014년) 글꼴을 만들어 일반에 무료로 배포했다. 창의력 넘치는 `경영하는 디자이너`의 부성애, 그 이상이었다. 자신의 원칙을 공언한 것이다. 우아한형제들에 대한 평가는 김 창업자에 대한 평가이고, 이게 곧 자녀에게까지 건너갈 테다. “모든 일의 근본은 행복 추구이고, 종착지는 가족”이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 명함. 명함 앞면은 기본에 충실하는 차원에서 이름을 크게 적고, 뒷편에는 상대를 만난 일시와 메모를 적게 란을 둬 배려했다.
`도서비 무제한` 지원책을 고집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직원이 십수 명 되던 시절 도입한 건데 회사가 커지자 탈이 났다. 성인용 잡지나 선물용으로 구매하는 사례 따위가 나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한 까닭이었다. 한도를 정하거나 아예 없애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소수의 잘못으로 다수의 낙을 누르는 일이었다. 기준을 둬 유지하기를 고집했다. `책은 반드시 서점에 가서 산다`는 자기 원칙을 적용했다. `책을 사면서 경험을 산다`는 것이다. 지금은 직원들이 뽑는 회사 제일의 복리후생이다. 우아한형제들 명함은 앞면에 큼직한 이름을, 뒷면에는 날짜와 메모를 적는 란을 둔다. 명함은 `이름을 담는 함`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려는 김봉진 창업자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가 지난 5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기업가정신 선포식을 마친 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명함을 교환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과시적 독서가`를 자처하는 그는 주당 책 한 권 읽기를 목표로 한다. 약속을 지키고자 습관처럼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습관은 일단 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몸에 익으면 자율이 된다. 이렇듯 원칙과 자율은 상반하는 듯 상관한다. 세계적인 기부 단체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5500억원을 기부하기로 한 것도 창업하면서 한 다짐과 닿아 있다.

“창업 초기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사를 보면서 성공한다면 더 기빙 플레지 선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꿈꾸었는데요. 오늘 선언을 하게 된 것이 무척 감격스럽습니다.”(2021년 2월 작성한 더 기빙 플레지 서약서 中)

김봉진(오른쪽)·설보미 부부는 2021년 2월 더 기빙 플레지에 재산 절반을 기부하기로 서약했다. 한국인 최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가 사업 초기 막연히 꿈꿨던 원칙을 지킨 것으로 평가된다.(사진=우아한형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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