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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권오준 회장 중도퇴진 정부 압력인가

논설 위원I 2018.04.19 06:00:00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결국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게 됐다. 권 회장은 어제 긴급 소집된 임시이사회 직후 “더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분에게 경영을 넘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권 회장은 후임자가 선정될 때까지 경영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자리를 지켜 달라는 이사회의 요청으로 두세 달 더 현직에 머물긴 하겠지만 중도 퇴진이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권 회장은 지난달 말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가 교체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도에 입각해 경영하겠다”며 회장직 고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나돈 중도 하차설에 끝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권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외국순방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번번이 탈락하자 정부의 우회적인 퇴진 압박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됐다. 전임자들이 같은 전철을 밟았기 때문이다. 정준양 전 회장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출장과 청와대의 재계 초청행사 등에서 일체 배제된 끝에 퇴진했다.

수사와 세무조사가 퇴진압박 수단으로 동원되는 정황도 예전과 다를 바 없다. 검찰은 시민단체가 포스코건설 등 계열사의 전·현직 경영진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고, 항간에는 국세청의 포스코 세무조사설이 계속 나돌고 있다. 민간기업으로 포스코와 함께 정치 바람을 많이 타는 KT의 황창규 회장이 그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소환돼 20시간이나 조사받은 것도 권 회장의 결심에 한몫했을지 모른다.

포스코는 2000년 정부 지분 전량 매각으로 민영화됐고 지금은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는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중도 퇴진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세계 철강시장을 호령하는 우리 대표기업의 총수를 정권이 멋대로 갈아치운대서야 나라 망신이 따로 없다. ‘낙하산 인사’로 제 식구에게 한 자리 안겨주는 그릇된 관행이 되풀이된다면 이 정부도 ‘적폐세력’이란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가 할 일은 인사 관여가 아니라 세계적인 철강공급 과잉에 미국 통상압력의 직격탄까지 덮친 난국에서 포스코가 슬기롭게 극복하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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