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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제약산업 70년, 형편 좀 나아지셨나요

천승현 기자I 2015.10.30 02:55:00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최근 한국제약협회는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며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 한 호텔에서 제약 원로들이 오랜만에 모여 덕담을 나누며 국내 제약산업이 걸어온 길을 자축했다. 후배 경영인들이 선배 경영인들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훈훈한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 70년간 국내 제약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993년 첫 국산신약 ‘선플라주’가 나온 이후 22년만에 국내제약사가 배출한 신약은 26개로 늘었다.

글로벌제약사들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눈독을 들이는 항체 바이오시밀러 분야는 한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해외 수출 소식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업체도 등장했다.

하지만 민낯을 들여다보면 갈 길은 아직 먼 것 같다. 냉정하게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했다고 인정할만한 신약은 하나도 없다. 이미 다국적제약사가 판매 중인 약과 유사한 신약이 대부분이다.

제약사들은 다국적제약사의 신약을 팔기 위해 출혈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신약 개발 공로에도 불구하고 다국적제약사로부터 신약 판권을 가져오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경영 성과로 평가되는 실정이다. 국내제약사간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가도 돌아서면 상대방의 주력 제품 판권을 뺏어오는 사례도 허다하다.

제약사들은 ‘복제약을 팔아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명분 아래 복제약 폭격을 멈추지 않는다. 연 매출 700억원대 규모의 진통제 ‘쎄레브렉스’ 시장에 무려 93개 업체가 복제약을 내놓을 정도다. 이미 현장에서는 ‘얼마 처방해주면 얼마를 제공해준다’는 뒷거래 소문이 기정사실로 들린다. 아직까지도 잊을만 하면 불법 리베이트 사건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이날 한 장소에서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던 경영인들은 어떨까. 그들은 제약협회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사회에서 무기명으로 리베이트 의심 업체를 아무런 물증 없이 스스럼없이 적어낸다. 이미 두 번이나 실시했고 오는 11월 이사회에서는 누굴 적어낼지 정보를 취합중이다.

제약협회 창립 70년, 국내제약산업 118년 역사의 성과로 보기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과거 제약사 CEO를 오래했던 한 인사는 “제약사 오너들이 달라지지 않으면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도 없다”고 꼬집었다. 지금은 삼페인을 터뜨리기보다는 반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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