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교실까지 들리는 장송곡, 귀갓길 막은 시위대..고통받는 시민들

황병서 기자I 2024.06.05 05:30:00

■서울지역 집회 신고 5만여건 전수분석 해보니
비대해진 표현의 자유 속 쪼그라 든 평온권
시각장애인들 “시위 소음에 차도로 걷게 되기도”
학생들 “학교 수업 중 시위 소음에 공부 방해”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김한영 수습기자] 서울 구로구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 인근 골목길. 70대 모친과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40대 여성 김혜진(가명)씨는 동네 교회 앞을 지나며 귀를 막았다.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교회 관련 집회가 이어지면서 소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탓이다. 특히 평일과 주말, 오전과 오후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는 확성기는 주민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씨는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창문을 열어 놓으면 마당에 키우던 강아지가 짖기 시작하고 그 소리에 잠자던 아이까지 깨는 불상사가 일어난다”면서 “이 교회 때문에 골목길에 경찰관들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다 국세 낭비 아닌가”라고 흥분하며 말했다.

(이미지=문승용 기자)
“집 앞 집회가 일상…소음에 안전 문제까지”

4일 이데일리가 서울 내 집회·시위가 빈발하는 주거지역과 학교 앞 등을 방문한 결과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소음 등 피해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주거지역은 법적으로 엄연히 ‘양호한 주거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지역’으로 구분돼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 ‘집회·결사의 자유’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권력이 돼 골목길까지 침투하고 있어서다. 표현의 자유가 비대해진 사이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기본권 중 하나인 ‘행복추구권’은 쪼그라든 셈이다.

서울 주거지역 집회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용산구, 고급 주택가의 경우 이러한 고통이 일상이 되고 있다. 서울 용산구의 고급 주거지역에서 일하는 한 경비원은 집회 확성기를 사용할 때면 소음에 고통스러워 하는 주민을 목격한다고 전했다. 그는 “주변에서 (집회의 소음이) 들릴 때도 있고 안 들릴 때도 있지만 확성기를 쓰면 좀 시끄러운 편”이라면서 “주변 거주민들도 시위 때문에 시끄럽다는 반응을 자주 목격 한다”고 말했다.

3일 오전 11시께 서울 구로구 오류동의 한 교회 앞 골목길에는 시위자들로 붐볐다. 주민들은 집회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사진=김한영 기자)
용산국제학교 학생의 학부모인 김지현(44)씨와 최은선(46)씨도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학교 앞에서 벌어지는 시위 때문이다. 소음도 문제지만 집회 현수막 내용도 ‘명품뇌물 주가조작 김건희 특검 막는 윤석열도 공범’, ‘국정농단 주가조작범 김건희 주자 조작 구속 시키자’ 등으로 자식들이 보기에 정치적일뿐더러 과격할 수 있어서다. 김씨는 “시위 때 북적북적하면서 싸우시고 하는데 아이들이 많이 걱정된다”면서 “(자녀가) 학교 밖 운동장에서 운동하거나 활동을 할 때 소음이 많이 들린다고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상인들 역시 피로감을 호소하긴 마찬가지다. 실제 1년간 집회가 이어지고 있는 구로구 한 교회 앞 일대에서 농수산물을 판매하는 가게 주인인 50대 남성 이현동(가명)씨는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매출이 떨어진다고 울상을 지었다. 좁은 골목길에 시위자들로 붐비다 보니 가게 입구 한쪽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씨는 “손님들하고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음이 크기도 하고 입구를 막다 보니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오기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인근 한의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30대 조무사 조현정(가명)씨는 “골목길에 한꺼번에 시위자들이 몰리다 보니 손님들이 주차할 공간을 이용할 수 없어 불편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보호받아야 할 장애인·학생도 집회에 ‘위협’…경찰도 ‘난색’

주거지역 집회로 인해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불편을 겪는 경우도 허다했다. 마포장애인복지회관 마포점자 도서실에서 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50대 김옥숙씨는 시각장애인들이 시위의 소음 때문에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시각장애인들은 소리로만 듣고 움직이는데 과도한 소음이 발생하면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 옆에 지팡이 소리가 안 들리는 등 소리로 사물을 인지할 수 없어 자동차에 부딪히거나 차도로 걷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3일 낮 12시 서울 용산구의 용산국제학교 앞에서는 ‘김건희 구속 수사 촉구 무기한 농성장’이란 이름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학부모들과 학생은 불안감을 토로했다.(사진=김한영 수습기자)
이와 함께 초·중·고등학교 앞에서 진행되는 집회의 피해도 컸다. 서울 양천구 강서고등학교 앞에서 벌어진 집회로 동네 주민도 피로감을 호소한다. 인근 편의점 점주인 강현모(56·가명)씨는 “한동안 확성기 들고 시위해서 시끄럽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용산국제학교에 다니는 윤주안(9)양은 “블루스퀘어에서 진행하는 시위 소음 때문에 공부하는데 방해를 받는다”면서 “창문을 닫아도 가끔 소리가 들려 선생님이 하는 말이랑 소리가 겹칠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적도 있다”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에미엘(12)군은 “소음도 문제지만 하교 후 지나 가는 길에 가끔 시위하는 사람이 쳐다보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면서 “그럴 때면 무서워서 빨리 뛰어서 (시위) 자리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원이 빗발치지만 경찰들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원모(29)씨는 “소음 때문에 민원을 넣어도 시위 당사자들이 데시벨 규정을 피해서 사각지대를 이용하기 때문에 별 효과가 없다”면서 “경찰이 왔을 때 잠깐 조용해졌다가 다시 시끄러워지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하지만 경찰 역시 이를 관리할 만한 구체적 제도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현장 경찰은 “두 집단이 갈라져 시위하는 경우 소음이 이중 소음으로 잡혀서 소음 측정이 어렵다”면서 “지역 주민이 힘들어한다면서 소음을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은 “시위하는데 경찰관이 가서 뭘 할 수는 없다”면서 “민원신고가 들어오면 출동을 하고 소리가 크다고 하면 소음기로 측정하는 정도의 조치가 가능하다. 소음 측정 후 정도가 크면 대표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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