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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억→1.4조…최태원-노소영 재산분할 '고무줄 판결' 왜?

성주원 기자I 2024.06.02 09:23:42

1심, SK 주식 특유재산으로 보고 분할 제외
2심, 父 비자금 기여 인정하고 분할에 포함
첫 조단위 재산분할될까…대법원 판단 주목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간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법원이 내린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결정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심 때는 665억원이던 재산분할 규모가 항소심에서 1조3808억원으로 무려 20배 넘게 늘었다. 이같은 결론이 확정될 경우 SK그룹의 경영 상황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향후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사건 항소심에서 노 관장 측 대리인 김기정 변호사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재산분할 대상에 빠졌다가 포함된 SK 주식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두 사람의 재산총액을 약 4조115억원으로 보고 분할비율을 최 회장 65%(약 2조6075억원), 노 관장 35%(약 1조4040억원)로 책정했다. 이 가운데 현재 노 관장의 보유재산을 제한 나머지 액수인 1조3808억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 회장 재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SK 주식’이 이혼소송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재산분할 액수는 크게 달라진다.

앞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의 SK(034730)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노 관장이 SK㈜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 등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특유재산(부부의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과 혼인 중에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판단하고 재산분할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이 보유한 일부 계열사 주식, 부동산, 퇴직금, 예금 등과 노 관장의 재산만이 분할대상이 됐다.

최 회장 측은 당시 1심 재판 과정에서 주식 지분이 선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증여·상속받은 SK계열사 지분에서 비롯됐으므로 특유재산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1심 재판부는 SK㈜ 주식이 증여·상속 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이 SK그룹의 가치 증가나 경영활동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최 회장의 SK 주식 등 모든 재산을 분할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러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도 했다.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빌딩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실무례와 다른 결정했던 1심…비자금으로 불린 재산 나누라는 2심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결혼하고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나 2015년 최 회장이 한 일간지를 통해 혼외 자녀의 존재를 공개하고 이혼 의사를 밝히면서 사실상 파경에 이르렀다. 이후 최 회장과 노 관장 간 이혼소송이 시작되면서부터 ‘최 회장의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서초동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통상적인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은 양 당사자가 혼인을 한 시점부터 혼인 해소가 되는 이혼 시점까지 늘어난 재산을 산정한 뒤 누가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를 따져서 결정한다. 결혼 생활이 길지 않았다면 혼인 이후 늘어난 재산만 살펴보지만, 혼인 기간이 20년 이상으로 길다면 혼인 이전에 갖고 있던 재산까지 일단 포함한 뒤 각자의 기여도를 참작해 분할비율을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1심 재판부가 최 회장의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뺀 것을 두고 “기존 이혼사건들에서 이뤄지던 법리와 실무례(실제 업무나 사무의 예)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이혼소송 항소심에서는 정경유착(정치인과 기업가 사이에 이뤄지는 부도덕한 밀착 관계)에 따른 장인 비자금의 재산형성 기여가 새롭게 인정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300억원이 사돈이자 최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회장에게 흘러들어가 SK그룹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재산분할은 혼인기간에 부부 각각 재산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느냐를 놓고 분할비율을 따져야 하는데 노 관장 본인이 아닌 아버지(혈족)가 기여한 부분도 당사자의 기여와 동등하게 볼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이같은 논란들은 향후 대법원에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결론은 향후 우리나라 이혼소송 판결 방향에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특유재산과 관련해서는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다른 한쪽이 적극적으로 그 특유재산의 유지에 협력해 감소를 막거나 증식에 협력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왔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사진=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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