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핫한' 상권서도 '깡통권리금'…임대료 상승까지 '설상가상'

정병묵 기자I 2018.11.30 05:00:00

서울 10곳 중 4곳 권리금 無
최악 경기에 핵심 상권 거품 꺼져
빈 점포 늘면서 상가 권리금 '뚝'
이태원·홍대·종로 등도 '흔들'

[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하루 손님이 20테이블도 안 되는데 권리금 깡통 차고 나가게 생겼어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씨에게 요새 경기가 어떠냐고 이야기를 꺼내자 불쾌한 심경을 표했다. 장사가 안 돼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장을 내놓았지만 권리금 6000만원을 내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아예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망리단길’(망원시장 일대 카페거리)이 한창 뜨는 것을 보고 창업했던 1년 반 전만 해도 그 정도 상가 권리금은 낼 만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갖 휘황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경쟁 카페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지금, 본인이 생각해도 이 가게는 그 만한 권리금을 주고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다.

권리금. 장사가 잘 돼 ‘목’이 좋은 상가에 보증금이나 임대료 외에 따로 붙는 웃돈 개념의 금액이다. 가게를 새로 낼 때 권리금 얼마를 내고 들어갔다면 나올 때는 최소 그 액수 이상만큼 돌려받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임대료 내기도 급급할 정도로 장사가 안되는 가게들은 폐업하고 싶어도 수천만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없어 진퇴양난에 처한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른바 ‘깡통 권리금’ 매장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10평 상가 권리금 2년새 3000만원→1000만원’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이 8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점포 10곳이 문을 열면 8.8곳이 망한 것이다. 더욱이 서울에서 권리금이 있는 상가 비율은 작년 기준 60.6%(한국감정원 집계)로 점포 10곳 중 4곳은 권리금이 아예 없을 정도로 장사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올해 권리금 관련 통계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전반적인 경기 불황과 ‘묻지마 창업’ 열풍까지 겹치면서 주요 상권의 권리금 규모도 자연스레 쪼그라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1월 현재 경기 지표가 6개월째 하락세일 정도로 경기가 좋지 않은데, 실제 상가 현장을 들여다 보면 빈 점포에 임차인을 모시기 힘든 상황”이라며 “장사가 아주 잘 되는 곳은 가게를 내놓을 리가 없고, 안 되는 곳이 가게를 내놓는데 이들 중 권리금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건국대 인근 자양동 C공인 관계자는 “2년 전 이 동네에서 전용면적 33㎡(약 10평) 기준 권리금이 5000만원에서 5500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000만원 수준”이라며 “권리금을 내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는데 돌려받을 길은 없고 이자 내기에 급급한 ‘권리금 푸어’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 주요 상권에 가게를 차려 봤자 돈을 벌기 힘들다는 인식이 서서히 퍼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공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임대료는 오히려 오르면서 상인들에게 이중고가 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3분기 중대형(3층 이상 또는 연면적 330㎡ 초과) 상가 공실률은 이태원 21.6%, 명동 6.4%, 종로 5.3%, 강남대로 2.6%, 건대입구 4.5% 등으로 작년보다 증가했다. 그러나 ㎡당 임대료는 이태원 4만7500원, 종로 8만4600원, 건대입구 65000원으로 작년보다 올랐다. 명동과 강남대로의 경우 ㎡당 임대료는 작년보다 소폭 떨어졌지만 각각 26만97000원, 13만9200원으로 타 상권에 비해 상당히 비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수요 공급 원칙’으로 보면 상가 임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공실이 늘어나면 임대료는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 가치가 날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 번 오른 임대료가 내리기는 커녕 오르면서 경영난에 처한 상인들을 또다시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인기 절정’ 홍대·연남동 상권 임대료 상승에 ‘이상징후’

새로운 가게들이 하루에 하나씩 생겨나는 ‘핫’한 상권도 뜯어 보면 ‘외화내빈’ 징후가 보이고 있다. 최근 2~3년여 간 서울에서 가장 급성장한 상권 중 하나인 마포구 연남동의 경우 올 3분기 기준 공실률이 작년보다 줄었지만, 창업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열기가 예전만큼 뜨겁지 않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조사 전문업체 ‘부동산 도서관’이 이 상권을 집중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연남동에서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후 상가로 개조한 경우는 2015년 85건에서 2016년 102건으로 정점을 찍고 작년 75건, 올 상반기 23건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소형 다가구주택 거래액도 2015년 905억원에서 올 상반기 331억원으로 줄었다. 연남동에서는 2015년부터 주거형 다가구주택을 구입해 1, 2층을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 등으로 개조해 임대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에서 젊은 창업자들이 독특한 상권을 형성했지만 이마저도 시들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리서치회사 NAI프라퍼트리 관계자는 “연남동은 주변 경의선숲길공원을 찾는 이들이 많아 유동인구 증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권인데 최근 경기 침체 속에서도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예전만 못하다”며 “그동안 이곳만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렸는데 임대료 상승으로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가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경기 불황과 실업난이 장기화하고 임대료 상승이 계속되는 한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이 지속될 것”이라며 “생계형 창업이라고 하더라도 철저한 준비를 통해 시장에서 충분히 통할 경쟁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깡통 권리금 : 수천만원에 달하는 권리금을 내고 점포를 빌린 상가 임차인(세입자)이 불황과 경영난으로 폐업하려고 해도 예전에 기존 상인에게 지불했던 만큼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권리금을 아예 회수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