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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덕 칼럼]문재인 정부의 ‘과속 스캔들’

남궁덕 기자I 2017.10.27 05:30:00

'탈 원전·親勞' 내세우지만 급진정책 반대 목소리 커져
공약이행 '대못' 박기보다
공론화委 같은 집단 통해 비전 제시, 균형 잡아야

[남궁 덕 콘텐츠전략실장] “한 포럼에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만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었다. 블레어 전 총리는 취임 초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그런데 여러 가지 문제를 내각에서 가져오는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단 것이다. 다들 자기 판단만 기다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총리 그만둘 때쯤 됐을 땐 어떤 문제를 가져와도 영국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즉석에서 생각날 정도로 지식과 경험이 쌓였는데 불행히도 인기가 땅바닥이라 내려와야 했다고 하더라. 정치가 그런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올 봄 ‘이데일리 퓨처스포럼’에 참석해 들려준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초반 국정운영을 보면서 새삼 그의 말이 떠오른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10일 취임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탈 원전’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단축’, ‘통상임금 확대’ 등 진보정부의 색깔을 드러내는 정책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높은 지지율을 업고 선거공약을 정책으로 바꿔가고 있다. 박수치는 사람도 많지만, 너무 빠르다 덜 익은 정책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국민들도 그에 못지않다.

문재인 정부는 진퇴양난의 정책에 대해서 공론화위원회라는 마법을 동원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첫 번째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이 많은 걸 시사한다.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주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재개를 정부에 권고했다. 문 대통령은 공사재개 결정과 함께 탈 원전의 방향성은 지키겠다고 했지만, 그냥 밀어붙이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선 것은 지혜로운 결정이다. 잘못된 선입견을 견지하는 게 도그마다. 그건 열린사회가 피해가야 할 장애물이다.

여론이 한쪽으로 모아지지 않을 때 ‘대못’을 박아대는 건 민주주의 원칙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리더의 덕목도 아니다. 아무리 공약을 내걸었더라도 국가의 백년대계에 관한 일은 지금부터라도 숙려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반대 목소리가 큰 공약을 공론화위원회에서 걸러내는 건 나쁘지 않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용기가 필요하다. 생각이 달라졌다고 국민에게 소상하게 밝히는 것이다. 이럴 경우 견고한 지지율을 깎아먹을 순 있지만 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는 국민들의 지지를 새로 얻게 된다. 그게 정반합 정치다.

‘상식의 시계’는 보채지 않는다. 탈 원전논의는 지금부터다. ‘원전 성악설’을 그려놓고 나머지를 재단할 게 아니다. 원전의 산업 생태계, 그를 뒷받침해온 연구 인프라와 교육시스템, 인력 등의 경쟁력을 먼저 점검하라. 같은 방법으로 원전을 대체할 신재생에너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해서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알려라.

정치는 맘에 들지 않는 걸 걷어내는 게 아니다. 새로운 청사진을 내걸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본말이다. ‘적폐청산’이 정책의 맨 앞 순위에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본말전도다. 대통령은 촛불민심을 강조하는 데 그건 선거용으로 용도가 폐기됐다. 대통령은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데 매달렸으면 좋겠다. 특정 사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커질 때 참모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보고할 때 귀가 솔깃할 수가 있다. 그 달콤함이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면 나라 거덜 난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대국민보고대회에서 “세금 가장 보람 있게 쓰는 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친노동정책이 취지와 달리 되레 일자리를 없애는 쪽으로 변질되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과 편의점·주유소의 아르바이트생을 줄이는 곳이 늘고 있다.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친 노동정책이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줄이는 역풍을 만들어 내고 있는 셈이다.

‘마오쩌둥과 참새이야기’가 반면교사가 됐으면 좋겠다. 마오쩌둥이 1958년 농촌순방 중에 참새가 곡식을 쪼아 먹는 것을 보고 “참새는 해로운 새”라고 말하면서 중국에서 참새가 멸종직전까지 갔다.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참새 박멸운동이 벌어진 결과다. 참새가 사라지면서 메뚜기 등 해충이 창궐해 농작물 수확이 크게 줄어들었다.

지금은 한사람의 전지전능으로 나라를 이끄는 시대가 아니다. 소통과 대화, 집단지성으로 부족함을 채우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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