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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 했다면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전히 데스크톱 PC가 IT 세상의 대부분이었고, 슈퍼컴퓨터는 대단한 과학자나 연구소에서 쓸 법한 장비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 아이폰을 필두로 한 스마트폰의 시대가 도래했고, 이제는 스마트폰 보급률마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음성인식 도우미 등 인공지능(AI)의 발전은 슈퍼컴퓨터의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개개인의 책상마다 슈퍼컴퓨터를’..젠슨 황의 비전
이런 상황에서 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젠슨 황이 ‘개인용 슈퍼컴퓨터’ 시대를 선언했다. 이제 더 이상 맨 처음에 언급한 문장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젠슨 황은 최근 미국 새너제이에서 진행한 ‘엔비디아 그래픽 기술 컨퍼런스(GTC) 2017’에서 직접 ‘DGX 스테이션’과 ‘DGX-1’이라는 제품을 소개했다. 최신 GPU(그래픽카드) 코어를 기반으로, 각각 4대와 6대의 GPU를 탑재한 슈퍼컴퓨터다. 가격은 6만9000달러(약 7781만원)와 14만9000달러(약 1억6800만원)로, 크기는 데스크톱 PC와 비슷한 수준이다. 여전히 개인에게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긴 하지만, 수십, 수백억원 가격에 방 하나 가득한 크기로만 슈퍼컴퓨터를 여전히 상상해 온 대중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제품이 등장한 배경에는 GPU의 진화가 있다. 본디 GPU는 그래픽 정보 처리 역할만 수행했었다. 주요 데이터를 처리하는 연산 작업은 중앙처리장치(CPU) 프로세서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GPU 업체인 엔비디아와 AMD는 GPU의 장점에 주목해 CPU의 연산작업을 돕는 역할을 부여했다. AMD는 CPU 설계 기술도 보유하고 있어 CPU와 GPU를 연계하는 방향으로 기술 개발을 이어간 반면, GPU 기술만 보유한 엔비디아는 철저히 GPU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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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U는 일단 CPU보다 전력 사용량이 낮다. 각 코어별 성능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GPU 코어는 CPU 코어보다 더 낮은 성능을 제공하는 대신 전력 소모량도 적은 것. 이 때문에 과거에는 GPU가 보조적인 역할만 수행했지만, 점차 GPU 코어도 성능이 높아지면서 CPU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로 인해 엔비디아는 GPU만으로 구동되는 슈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크기는 더 작으면서 전력 소모량도 적어 유지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된 것.
이러한 이면에는 게임 산업의 발전에 따라 초고화질 그래픽 처리의 필요성이 증가한 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 하다. 비디오 게임의 발전이 그 동안 IT 분야 하드웨어의 발전을 이끌어왔는데, 그 결과가 슈퍼컴퓨터의 대중화로까지 이어진 셈이다.
엔비디아는 올해 GTC 기간에 이 밖에도 △도요타자동차와의 협업을 통한 자율주행차 성능 개선 △SAP와의 협업을 통한 기업 IT 환경에서의 AI 도입 활성화 △영상 분석을 통한 스마트시티 구현 플랫폼 출시 △보다 쉬운 가상현실(VR) 콘텐츠 제작 지원 등을 발표했다. 그래픽 처리 성능 분야에서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응용 분야를 확장해나가는 전략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와 빅데이터 처리 수요가 늘면서 GPU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GPU 분야에서 엔비디아의 경쟁력이 독보적이기 때문에 앞으로 엔비디아의 행보에 계속 주목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