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구칼럼] 공유지의 비극과 '보이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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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기자I 2015.04.10 03:01:01
시계바늘을 182년전인 1833년으로 돌려보자. 영국의 한 마을에 목초가 풍부해 가축 기르기에 적격인 초원이 있었다. 초원 인근에 살고 있는 목동들은 가축을 끌고 와 풀을 먹였다. 땅은 넓고 동물 수가 적다 보니 가축이 풀을 마음껏 뜯어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초원에 점점 더 많은 가축이 들어오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좋은 풀은 줄어들고 대지는 오물로 가득찼다. 초원은 결국 방목할 수 없는 황무지로 전락했다.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포스터 로이드가 1833년에 선보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이다. 196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터버버라 소속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과학잡지 ‘사이언스’에서 다루면서 빛을 본 이 이론은 개인 이익과 공공 이익이 상충할 때 개인 이익만 고집하면 경제주체 모두 파국을 맞는다는 준엄한 교훈을 일깨운다.

이달 16일이면 여객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는다. 전남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가 침몰해 한 명의 생존자도 구하지 못한 채 300여 꽃다운 어린 생명이 바다속으로 사라진 비극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적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다.

세월호 참사는 공유지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줬다. 한국사회라는 ‘공유지’에서 구성원들은 규정을 안 지켜도 문제없다는 식으로 너나 할 것 없이 규칙을 어겼다. 물에만 뜨면 된다는 식으로 화물을 과적하고 승선 인원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해양경찰청은 300여명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도 수수방관만 했다.

생존자 구조와 사고수습 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당국의 미숙한 대처는 전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위기상황 지침서인 매뉴얼의 부재와 형식적인 운영관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객선이 침몰하는 상황에서 승객 안전은 도외시하고 ‘제복(직위)의 가치’를 벗어던지며 자신만 살기 위해 도망친 선장과 그 추종자들의 치졸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국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는 국가권력이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으로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강조했다.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도 ‘국민의 자연권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역설했지만 사고 당시 진도 앞바다에는 이러한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세월호가 곳곳에서 흉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도심에서 잇따라 발생한 싱크홀(지반침하) 등 각종 부실공사는 변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마이크로코즘(축소판)이다. 한국경제가 지난 50년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압축성장을 일궈냈지만 우리사회는 안전불감증이 팽배하는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특히 ‘무사안일’과 ‘철밥통’, ‘복지부동’으로 묘사되는 공무원 사회는 그들만의 갈라파고스에 매몰돼 세월호 참사와 같은 위기상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철저함과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사고가 잇따르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정부 규제가 줄어들고 시민정신이 축적돼 사회적자본을 육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관련당국이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공유지의 비극을 연출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 메커니즘보다는 ‘보이는 손’인 정부 규제가 더 필요할 지도 모른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꼭 필요한 규제’는 매우 엄격하게 해 시장 규율을 살리면서 국가를 안전하게 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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