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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상 허점 있었다"…관리 사각지대 노후 꼬마빌딩 서울만 309곳

김보경 기자I 2018.06.05 05:00:00

붕괴 건물 1966년 건축 이후 52년간 안전진단 열외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도 빠져.."제도상 허점"
정비구역 지정이후 관리처분 안나 미철거 서울에 309곳

지난 3일 낮 12시 35분쯤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4층짜리 상가 건물이 무너졌다. 건물 붕괴 현장에서 잔해물 제거 및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서울시 재난본부)
[이데일리 김보경 송이라 기자] 지난 3일 무너진 용산 상가 건물은 52년이나 된 철거대상 건물이었지만 단 한번도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건물은 소규모 건물이어서 안전점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2006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후 12년이 지나도록 관리처분 인가가 나지 않아 철거도 지연됐다. 서울시와 용산구청은 정비구역 내 안전문제는 재개발조합 소관으로 치부했다. 건축법, 안전관리기본법 등 관련 법과 규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됐던 이 건물은 주변의 대규모 공사 이후 벽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전조현상을 보였지만 그마저도 그대로 방치됐다.

◇노후건물 국가안전대진단서 왜 빠졌나

전날 무너진 용산 상가 건물은1966년 건축된 것으로 건물 준공 이후 증·개축된 적이 없다. 한 눈에 보기에도 위험성이 높은 노후된 건물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지어진 이후 어떤 안전점검이나 진단을 받은 기록이 없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추진한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류희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4일 “제도상 허점이 있었다”고 밝혔다. 행안부에 따르면 해당 건물은 연면적 301㎡의 근린생활시설로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인 다중이용건축물, 연면적의 합계가 3000㎡ 이상인 집합건축물 등에 해당하지 않아 올해 검진대상인 34만개소에 포함되지 않았다.

또 건축물 소유자나 관리자는 사용승인일 기준으로 10년이 지난날부터 2년마다 한 차례 안전 정기점검을 해야 하지만 해당 건물은 연면적 301㎡의 근린생활시설로 건축법 시행령 제23조의2에 따른 정기점검 대상도 아니다.

과거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건축물 등을 특정관리대상시설로 지정해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판매시설의 경우 1000㎡ 이상 시설만 지정·관리하도록 돼 있어 이 또한 요건에 해당하지 않았고, 용산구에서 지정·관리한 이력이 없다.

◇12년간 철거지연…용산구 “안전은 조합 책임”

서울시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해당 건물이 속한 용산 재개발 5구역은 2006년 도시환경정비지구로 지정된 후 12년이 넘도록 관리처분 인가가 나지 않아 철거가 지연된 상황이다.

관련 법에 따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더라도 노후해서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을 철거하려면 관리처분 인가가 나와야 재개발 혹은 재건축 조합 측이 철거에 나설 수 있다.

철거가 지연됐지만 조합 설립 이후에는 안전관리가 조합 책임이라는 이유로 용산구청은 해당건물을 위험시설물로 관리하지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이 추진되면 철거 예정 건물이 되는데 용산 상가 붕괴 지역은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관리처분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사각지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서울 전역에 이처럼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관리처분 인가가 나지 않아 철거하지 못하는 건물이 309곳이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시는 이 중 정비구역 지정 후 10년이 넘었는데도 관리처분이 내려지지 않은 182곳을 우선 점검하고 나머지를 순차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점검 대상 309곳에는 도시환경정비사업, 주택재개발, 주택재건축, 재정비촉진지구 등이 모두 포함됐다. 점검 결과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된 곳이 나오면 조합이나 사업 주체와 협의해서 즉각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등 관련 규정을 검토해 미흡하거나 불명확한 부분을 발굴·보완해 제도개선을 추진하며, 조합 표준정관에 안전관리 의무조항을 신설할 방침이다.

◇대규모 공사 인근 노후 건축물 안전확보 논의

해당 건물에 입주한 식당 주인이 사고발생 한달 전인 지난달 초 건물에 이상이 있다고 용산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용산구청은물론 서울시도 관리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다.

붕괴 현장 인근 주민들은 2016년 ‘용산 센트럴파크 공사’를 시작하면서 주변 건물들에 균열이 생기는 등 이상현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청이 안전조사 등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붕괴한 건물 1~2층에서 음식점을 운영해온 정모(31)씨는 “건물에 이상이 있어 불안해 사진까지 찍어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었다”며 “구청에서도 사람이 나온 적도 있었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용산구청은 아직까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날 건축물 안전점검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오는 8일 청와대에서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서울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 공사장 인근 소규모·노후 건축물 안전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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