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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탄핵 1년]'창설 30년' 헌재의 재발견…소장 국가요인 격상

한정선 기자I 2018.03.09 05:00:00

대통령 탄핵 계기로 헌재에 헌법재판 접수 약 45% 증가
선거·투표 무효 재판 이관· ‘재판소원’ 기능 개헌 추진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사시존치 헌법 소헌에 대한 선고가 열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정선 기자]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통치구조의 위기 상황, 사회갈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등 헌법의 가치를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3월 10일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당시 박근혜(66)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이정미(56·사법연수원 16기) 전 재판관은 파면 결정 3일 뒤 퇴임사에서도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가치를 재차 강조했다

헌재의 사상 첫 대통령 탄핵 결정으로 헌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급증했고 헌재의 위상은 높아졌다. 헌재가 헌법 정신에서 벗어난 선출직 권력자의 권력을 합법적으로 국민이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냈기 때문이다.

◇탄핵 심판 전후로 헌법재판 접수 이전보다 44.9% 급증

헌재에 대한 기능과 역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신뢰가 높아지면서 헌재에 접수되는 헌법재판 건수도 급증했다.

지난 2016년 12월 헌재가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맡은 뒤 헌법소원·위헌법률·권한쟁의 심판 등 헌법재판 사건 수는 월평균 229건으로 이전 6개월 평균(158건)보다 44.9% 증가했다.

탄핵심판을 지켜보며 헌재의 위상과 역할을 재인식한 국민들이 기본권 침해 사건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대신 헌재에 직접 구제를 요청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승인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등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도 이 시기에 제기됐다.

헌법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면서 탄핵정국 당시에는 헌법 관련 서적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0월 기준 286권인 헌법 분야 도서 판매수는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같은 해 12월에는 3442권을 기록했다.

◇정부 3부와 대등한 헌재…재판소원 도입 추진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9차 개정헌법에 따라 독립기관으로 창설돼 창설 30돌을 맞은 헌재는 그간 대법원의 그늘에 가려 존재감이 미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헌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계기로 행정부·입법부(국회)·사법부라는 기존 ‘삼권 분립체계’에 더해 제 4의 권력분립기구로 부상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위상 강화에 힘입어 헌재는 새 정부 들어 헌재소장의 정부의전 서열 정리에 나섰다. 헌재는 지난해 5월 헌법상 3부와 대등한 독립기관의 지위를 갖고 있다며 ‘4부 요인’이 아닌 ‘국가요인’이란 용어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소장은 그간 3부 요인인 대통령(행정), 국회의장(입법), 대법원장(사법)에 이어 4부 요인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처럼 서열을 매기기 보다는 같은 국가요인으로 부르자는 것이다.

아울러 헌재는 대법원의 선거·투표 무효 재판 기능을 헌재로 이관하고 ‘재판소원’ 기능을 신설하는 개헌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판소원은 법원 재판까지도 헌법소원 청구 대상으로 삼는 개념이다.

심경수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은 헌재가 촛불집회를 헌법적인 절차로 매듭지은 것”이라면서 “헌재가 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창설된 헌재가 간통죄 폐지와 통합진보당 해산, 대통령 탄핵 등 굵직한 사건을 통해 헌법이 국민 실생활에서 지대한 영향을 주는 규범체계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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