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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장군의 굴욕

지영한 기자I 2009.02.28 11:43:53
[뉴욕=이데일리 지영한특파원] 폴란드 자유노조 지도자로 대통령까지 올랐던 레흐 바웬사는 어느 날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을 만나 폴란드가 가급적 빨리 나토(NATO)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바웬사는 이와 더불어 폴란드에 투자를 확대해달라며 미국의 장군(General)들을 더 많이 보내줄 수 없냐고 물었다. 이들 장군들의 이름은 제너럴 모터스와 제너럴 일렉트릭이었다고 클린턴은 자신의 회고록 `마이 라이프`에서 밝히고 있다.

과거 미국과 이스라엘은 서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장군들을 교환하기로 했다. 미국에선 이스라엘방위군(IDF) 장군과 모사드(Mossad) 장군을 요청했는데, 이스라엘은 모터스(GM) 장군과 일렉트릭(GE) 장군을 달라고 했다. 물론 돌아다니는 유머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제너럴 모터스(GM)와 제너럴 일렉트릭(GE)은 미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해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단적인 예로 1950년대 GM 사장 출신으로 국방장관에 오른 찰스 윌슨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무렵 영화배우이던 레이건 前 대통령은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 `신세대 부부`로 GE 제품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군들이 요즘 말이 아니다. GE는 100년이 넘는 다우 지수와 유일하게 역사를 같이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GE의 주가는 다우 구성 종목중 5번째로 10달러 밑으로 추락했다.  실적부진 책임으로 CEO가 보너스를 반납하고, 주주들에겐 배당까지 삭감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됐다.

특히 GM의 처지가 말이 아니다. 2007년 사상 최대 손실을 기록한데 이어 하루전 발표한 2008년 손실은 역대 2번째로 컸다. 최근 2년간 손실 규모는 총 700억달러에 육박한다.

▲ GM은 90년대 세계 첫 전기차를 개발하고도, 친환경車 주도권을 도요타에 빼앗겼다. 10억달러나 투입된 EV1.
GM은 지난해 부시 정부로부터 134억달러의 구제자금을 받아 파산을 모면했지만, 실적부진에 따른 자금고갈이 심화되자,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기 무섭게 166억달러의 추가 자금을 요청하고 나섰다.

하지만 GM이 추가 자금을 받아 또 다시 위기를 넘기더라도 중장기 생존을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또 GM의 위기가 그동안 오랜동안 누적된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GM이 획기적으로 변신해야만 생존도 가능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GM의 위기는 1984년 사업개편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당시 CEO인 로저 스미스는 북미 사업부를 ▲B-O-C(뷰익-올즈모빌-캐딜락)과 ▲C-P-C(시보레-폰티악-캐나다) ▲트럭·버스 등으로 개편했다.

그러나 분할된 조직간에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됨에 따라 차량의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고, 사업부별로 인력수요는 급증했다. GM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985년 43%에서 1987년 37%로 추락했다.

1990년초 미국이 극심한 리세션에 빠져들자,당시 CEO인 로버트 스템펠은 공장 폐쇄와 감원 등을 통한 구조조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이사회는 1992년 자금난을 이유로 급기야 스템펠을 내쫓았다.

2006년 백만장자인 거크 커코리언은 GM의 지분 10%를 사들여 GM의 최대 개인주주가 됐다. 그는 GM CEO인 릭 왜고너에게 20%의 지분을 르노-닛산에게 매각하고, 브랜드를 줄이고, 제품 디자인의 수준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는 관철되지 않았고, 커코리언은 지분을 털고 나갔다.

2007년 릭 왜고너는 전미자동차노조(UAW)와 협상을 벌여 2010년부터 퇴직자의료보험기금(VEBA)을 운용하고, 인력구조조정인 `바이아웃(buyout)` 등에 전격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를 살리자는 이같은 조치가 실행도 되기전에 GM은 구제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기회를 놓친 셈이다.

이에 앞서 GM은 1990년대 후반 세계  첫 전기차인 EV1 사업에 10억달러나 쏟아부었지만 사업을 접어야 했고, 2000년대 들어선 수년째 고전하던 올즈모빌의 주공략 대상을 젊은층으로 잘못 잡는 바람에 10억달러 이상의 마케팅 비용만 날리고 올즈모빌 브랜드를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이러한 매니지먼트의 실패가 거듭되면서 1985년 43%를 기록했던 GM의 미국 시장점유율이 올 1월엔 22%까지 추락했다.  

100℃에 끓는 물은 99℃까지는 손을 넣어보기전에는 얼마나 뜨거운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모터스 장군(將軍)의 몰락이 지금에야 불거졌지만,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잉태됐다. 한국기업들이 GM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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