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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정치의 사법화]정치가 실종된 정치…‘묻지마 고소고발’ 난무

조용석 기자I 2019.06.05 05:00:00

강력한 양당체제 구축되며 적대적 정치에 몰두
상대 압박 및 지도부 의지 보여주려 고소고발 사용
“정치로 못 푸니 정치 아래에 있는 법에 기대”
유명무실한 자정기능…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져

선거제 개편안과 사법제도 개혁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4월 26일 국회 본청 의안과 앞에서 국회 관계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안건 법안제출을 위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1. 4월 24일부터 같은 달 30일 새벽까지 선거법·개혁입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발생한 국회의원 고소·고발건은 148건에 달한다. 이 기간 국회에는 팩스사보임, 국회의장 병상결재 등 생소한 단어뿐 아니라 빠루(노루발못뽑이), 망치 등 연장까지 등장했다.

2.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과 같은 당 김현아 의원은 지난달 3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우상호·박찬대 의원을 모욕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국당은 우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나 원내대표가 지금 좀 미친 것 같다”고 발언한 것을, 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분 캐릭터와 함께 나 원내대표 사진을 함께 올린 것을 문제 삼았다.

3.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1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박 의원이 전날 시민단체와 함께 KT채용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는 김 의원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 검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유에서다.

타협이 실종된 정치권에 의미 없는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 행정·사법과 함께 3대 국가권력인 입법기관이 자신의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사법부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사법기관 판단에 대해서도 쓰면 삼키고 달면 뱉는 정치권의 행태는 자신뿐 아니라 사법부에 대한 신뢰까지도 함께 망가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 타협도 자정능력도 없는 정치권…수준도 떨어져

정치권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고소고발을 남발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을 정치의 기본인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기 때문으로 본다. 소수의 정치인이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했던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시대가 끝나면서 거대 양당체제가 자리잡았고, 이후 상대를 끌어내려야 이길 수 있다는 적대적 정치가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대화와 타협이 부족한 상황에서 상대를 압박하려니 고소·고발이 빈번해졌다는 얘기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마디로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기 때문에 고소·고발이 많은 것”이라며 “정치로 풀어야 할 것을 못 푸니 정치보다 아래에 있는 법의 판단에 의존하게 된다”고 꼬집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 정치가 마땅히 해야 할 타협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며 “타협을 못하는 국회는 존재 의미도 상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협상력 제고를 위해 고소·고발을 사용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맞고소나 맞고발을 통해 상대를 압박하는 동시에 쌍방 고소·고발 취하를 요구할 수 있기는 좋은 구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당 지도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일각에서는 초선의원이 많은 현 정치지형이 고소·고발을 난무하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치적 장래가 불안한 초선의원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당과 지지층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주거나 스스로 존재감을 부각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필요이상으로 자극하게 되고 결국 고소·고발이 빈번해졌다는 것이다. 20대 총선 직후를 기준으로 초선의원 비율은 300명 중 132명으로 44%에 달한다. 정치권 관계자는 “(고소·고발 난무는)정치의 실종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정치인들의 수준이 떨어진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명무실한 윤리위도 한몫…사법부 불신으로 이어져

정치권에서는 국회 자체 자정기능이 마비된 것도 고소·고발이 빈번해진 중요한 이유로 본다. 당 자체 윤리위뿐 아니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역시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정치권 내부 자정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사법기관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5.18 민주화운동 망언 의원 3인방(김진태·김순례·이종명 한국당 의원)에 대한 국회 윤리위의 처리는 좋은 예다.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공동으로 지난 2월 망언 3인방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했으나, 윤리위는 4개월이 지난 지금도 이들에 대한 징계를 전혀 논의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국당 자체 윤리위는 이종명 의원에게는 제명 징계를 내렸으나 이를 최종결정할 의원총회를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끌고 있다. 김진태·김순례 의원은 각각 경고 및 당원권 정지 3개월에 그쳤다.

사법기관 내에서도 정치권의 ‘묻지마 고소고발’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다. 정치권에서 넘어온 사건은 어떤 결론을 내리든 한 쪽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정치권 고소고발 사건은 제때 수사하지 않는다며 항의하고 처리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항의한다”며 “부담감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치가 자꾸 사법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정치도 법원도 함께 우스워졌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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