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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한반도 2개 국가론’…핵 사용 명분 쌓나[한반도24시]

윤정훈 기자I 2023.09.04 06:25:00

북한,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 국호 사용
한반도 내 2개 국가론 지향
체제경쟁 실패 자인, 대남 핵사용 가능성 해석
북한, 신냉전 체제 기류 편승..중러와 교류 전망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지난 8월 한반도에서 핵전쟁연습이 진행됐다. 한반도 남쪽에서는 핵확장억제력의 실행력 제고와 과시를 위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한미군사연습을 진행했다. 한반도 북쪽에서는 조선인민군 총참모부가 남반부 전 영토를 점령하는데 목표를 두고, 중요지휘거점과 작전비행장들을 초토화해버리는 것을 가상한 전술핵타격훈련을 실시했다.

2017년 11월 북한의 ‘국가핵무력완성 선언’ 이후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하는 북미협상이 실패하면서, 북한은 미국과의 정면대결전을 선포하고 핵·미사일고도화와 전술핵무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한미는 워싱턴선언에 따라 확장억제력의 실행력을 강화하는 핵협의그룹(NCG)의 가동과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통한 ‘공포의 균형’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와 핵을 통한 전쟁억제 논리가 충돌하면서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에서 대한민국 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대 국가관계로 전환됐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민족공동체론과 민족공조론에 따라 공존을 모색했던 남과 북이 상대를 ‘주적’ 또는 ‘명백한 적’으로 규정하고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전에는 북한이 ‘남조선해방론’을 유지하면서 남측 정부를 ‘남조선괴뢰정부’라고 불렀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은 흡수통일에 대한 강한 우려로 남북기본합의서 채택과 유엔동시가입을 실현하고 남북공존을 모색했다. 남북합의서에는 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했지만 통칭 ‘남측’, ‘남조선’으로 표기하거나 호칭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북한 지도자와 인사들까지 ‘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배경이 궁금해진다.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북한이 한반도에서 2개 국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우리민족이 사실상 사회주의민족(‘김일성민족’)과 자본주의민족으로 나눠져 ‘우리민족끼리정신’에 따라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지 모른다. 북한이 대남관계를 대적관계로 바꾸고 ‘제발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자’고 하면서 김여정과 김정은이 연이어 ’대한민국‘을 호명함으로써 민족의 틀로 묶지 말고 각자의 길을 가자는 것으로 읽힌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평양문화어보호법(2023) 등을 채택하고 대한민국과 결별하기 위해 법적 정비를 했다.

북한이 한반도 2개 국가를 지향하는 것은 체제경쟁의 실패를 자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력갱생체제로 먹는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주변부 국가인 북한과,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글로벌 중추국가로 부상한 대한민국의 국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가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복원할 경우 ‘수령체제’의 모순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백두혈통’의 두려움이 한반도 2개 국가론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남 핵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같은 민족에게 핵을 사용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우리민족끼리(민족공조)’에서 벗어나 2개 국가론을 펴면서 적에게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란 주장이다.

어쨌든 북한이 남쪽과의 관계를 단절하더라도 국경봉쇄를 해제하고 중국, 러시아 등과의 대외개방을 서두르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온다면 우회해서라도 우리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한이 국경봉쇄 해제와 함께 ‘관광법’과 ‘상품유통법’을 채택한 것은 경제난 해소와 수령체제 안정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남북관계 복원 없이 대외개방만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밑에서 움직이는 북일대화가 진전을 이룬다면 한반도 질서변화의 새로운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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