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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고 빈발에도 안전조치 다 안해" 법원 철퇴…경영계 "매우 가혹"

최정훈 기자I 2023.04.27 05:30:00

중대재해처벌법 두 번째 판결, 한국제강 CEO 법정구속
“동종전과 많아 중형 불가피”…한국노총 “엄중 심판 환영”
법조계 “유족과 합의하고, 혐의도 인정했지만 처벌수위 높아”
당황한 경영계 “매우 가혹한 처사”…원·하청업체별로 반응 갈려

[이데일리 최정훈·김영환 기자] 처음으로 대표이사의 법정구속 판결이 나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두 번째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서도 예상보다 수위가 강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선고를 받은 한국제강 대표이사는 피해자 유족과 합의도 하고, 혐의를 인정하는 등 반성하는 모습도 보여줬음에도 동종전과가 많은 것이 법정구속이라는 강한 처벌로 이어졌다. 경영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처벌 수위가 오너의 법정 구속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례가 될 수 있어 재판에 넘겨진 삼표산업, 삼강에스앤씨, 두성산업 등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동종전과 많았다”…중대재해처벌법 첫 법정구속

창원지법 마산지원 형사1부(부장 강지웅)는 2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한국제강 대표이사 A씨에 대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중대재해법이 지난해 1월 27일 시행된 이후 근로자의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원청 대표이사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지난해 3월 16일 경남 함안의 한국제강에서 작업 중이던 60대 B씨가 1.2톤(t) 무게의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숨진 것과 관련해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선고는 중대재해법 두 번째 판결이다. 앞서 의정부지법은 지난 6일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법 1호 판결 당시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으로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하며, 앞으로의 판결도 비슷한 수준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날 판결이 법정구속이라는 중형이 선고되면서 파장이 더 컸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을 맞은 1월 26일 오전 민주노총 광주본부가 광주 북구 광주지방고용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중대재해처벌법 이행 의지를 비판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이날 재판부는 한국제강에서 산업재해가 빈번히 발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사고가 빈발했음에도 A씨가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이번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한 2007년 이후 한국제강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수차례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다. 특히 2021년 5월에는 40대 노동자가 화물차에 부딪혀 사망한 뒤 이를 계기로 실시된 사업장 감독에서도 안전조치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됐다.

재판부는 “수년에 걸쳐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것임에도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의 시행 유예기간이 있었고 이 기간 중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해 다른 사업장에 비해 안전 조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됐던 점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수위 상당히 높아”…당혹감 감추지 못한 경영계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의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센터장은 “한국제강의 대표이사는 피해자 유족과 합의도 했고, 안전보건확보의무도 다 하지는 못했지만 일정 부분 이행하고, 자백까지 했다”며 “그럼에도 실형이 나온 것은 판결을 예상보다 강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영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원청과 하청업체간 입장이 달랐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장의 안전보건 조치 여부를 직접 관리·감독할 수 없는 대표이사에게 단지 경영책임자라는 신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엄격한 형벌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매우 가혹한 처사”라며 “원청도 하청근로자의 안전확보를 위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겠으나, 고용계약 관계 및 지휘·감독 권한이 없는 원청에게 더 엄한 형량을 선고한 것은 형벌체계의 균형성과 정당성을 상실한 조치”라고 밝혔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서는 피해가 크겠지만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에는 집행유예로 선고가 나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제강 대표이사와 같이 재판을 받은 한국제강의 협력업체이자 사망한 근로자가 소속한 사업체의 사업주 B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이어 “대기업은 대표이사가 없더라도 시스템을 움직이는 체계를 꾸려갈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대표가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중소기업도 반복적인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전 예방을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양대 노총에선 결이 다른 입장을 전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에서 “예방할 수 있는 재해였는데도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었다”며 “이에 사법부가 엄중한 심판을 내린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노총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첫 번째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산업안전보건법 수준보다도 낮은 검찰의 구형과 법원의 선고가 앞으로 기준·선례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판결이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 논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고용부가 올해 1월 발족한 이 TF는 오는 6월까지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방향을 논의한다. 이 법의 추진 현황과 한계·특성 등을 진단해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모호한 조항이 많고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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