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나란 존재' 격렬하게 치댄 자화상…신재호 '화가'

오현주 기자I 2020.05.12 00:15:01

2019년 작
유충에서 성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빗대
한 인간이 탈바꿈하는 과정자체 담아내려

신재호 ‘화가’(사진=사이아트스페이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친 붓선을 따라 굵은 선과 면, 강렬한 색채에 빠져들다 보면 어렴풋이 한 남자의 형상이 잡힌다. 빈티지 풍의 요란한 의자에 걸터앉은 이 남자는 한쪽 무릎에 빈 왼손을 올린 채 붓을 든 오른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다. 이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가 보다. 한창 작업 중이었나. 구상 중이었나. 그의 주위를 둘러싼 주변이 온통 푸르고 노랗고 붉은 색과 색이 들끓고 있다. 작가 신재호가 격렬하게 빼낸 ‘화가’(A Painter·2019)다.

작가는 인간이란 ‘존재’를 화면에 옮겨낸다. 그저 일상적인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유충에서 성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빗대, 한 존재가 모습을 바꾸고 의식을 깨우는 과정 자체를 담아내려 하는 거다. 이를 두고 작가는 ‘탈바꿈’이라고 표현했다.

처음부터는 아니었단다. 초기에는 사실적인 묘사에 머물렀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편견·선입견을 깨려는 붓질에 따라 작품의 결도 변해갔다는 건데. 존재를 끌어내는 데 동원하는 사물이나 이미지가 뒤섞이며 두꺼운 질감을 입은, 추상적인 외양까지 띠게 됐다는 거다.

이런 작업여정을 두고 작가는 “인간 형상이 갖는 고정 이미지에서 탈피해 한 존재에 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미지를 체현하려 한 시도”였다고 말한다. “형상의 무차별적 탈바꿈을 시도한 작업은 나란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지난날 나를 구성해온 모든 기관을 반추하고 분해하고 재구성해 내가 염원하는 예술가의 모습에 도달하고자” 했다고.

결국 작품 ‘화가’는 작가가 자신이란 존재를 격렬하게 치댄 자화상이었다. 예쁜 그림들이 앞다퉈 눈을 간질이는 요즘, 모처럼 ‘고뇌하는’ 강한 그림을 봤다.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이아트스페이스서 여는 기획초대전 ‘탈바꿈’(Metamorphosis)에서 볼 수 있다. 나무보드에 오일·마커펜. 146.5×79㎝. 작가 소장. 사이아트스페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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