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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주의자] 추석 `종일 상차림` 주부 앞에 `10분 상차림`을 내놓다

박지혜 기자I 2016.09.15 04:38:11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간편한 식사에 만족스러운 맛을 느낄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습니다. 그 원초적인 욕구를 위해 간단하고 편안한 음식으로만 ‘편식’(便食) 해보려고 합니다. 맛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다소 솔직하고 자극적일 수 있겠지만 늘 먹거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잘 먹겠습니다

37년차 주부가 평가한 추석맞이 10분 상차림

한 집안의 장남에게 시집을 온 저희 엄마는 37년간 조상님 기일의 제사상과 명절 차례상을 손수 차려오셨습니다. 특히 짜지 않고 담백한 음식을 좋아하는 엄마는 사는 것을 꺼려해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드셨습니다. 그런 엄마에게 각종 전과 나물을 준비하고, 추석에 송편을 빚는 일은 당연한 명절의 풍경이었습니다.

요즘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방앗간에서 쌀가루를 빻아와 물을 넣고 반죽을 한 뒤 깨와 설탕, 녹두, 콩이나 계피 가루 등으로 소를 만들어 가족들과 둘러앉아 손자국을 내며 송편을 빚어야 ‘만족스런 추석이다’라고 생각하셨던 것이죠.

하루 반나절 내내 앉아서 빚은 송편과 기름 냄새를 맡으며 부친 전, 직접 엿기름 가루를 우려내 만든 식혜만을 고수했던 엄마 앞에 간편식 송편과 모듬전, 호박식혜를 내놓아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이마트 피코크 모싯잎 송편(600g, 6680원)과 호박 송편(600g, 5980원), 모듬전(470g, 8880원), 그리고 안동 김유조 단호박 식혜(460㎖, 2180원)입니다.

추석 전날 어김없이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 옆에서 피코크 제품의 포장을 뜯어 약 10분 만에 송편과 전을 데우고 식혜를 컵에 부어 간단한 상차림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드신 엄마의 전체적인 평은 ‘나쁘지 않다’ 였습니다. ‘냉동 식품’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있는 엄마의 점수로는 후한 셈이죠.

이마트 피코크 모싯잎 송편과 호박 송편, 모듬전의 겉포장지를 뜯은 모습
모듬전 가운데 쇠소기, 맛살, 햄, 새송이버섯, 우엉, 파 등을 꼬치에 꽂은 오색꼬지전은 생각보다 ‘실하다’, 고기완자전은 예상했던 ‘냉동식품’ 맛이지만 친숙하다, 동태전은 살이 단단하지 않고 잘 부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양과 가격 면에선 한 접시 내놓기에 적당하지만 차례상에 그득 올리기엔 양이 부족하고 여러 개를 사자니 비싼 편이라고 하십니다. 또 고기완자전은 달걀물을 한 번 더 입혀 데워야 ‘동그랑땡’ 모양이 나오겠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송편은 집에서 빚은 것보다 덜 쫄깃하지만 깨와 콩가루가 어우러진 소는 달지 않아 좋고, 떡 반죽도 적당히 간간하다는 평이었습니다. 모싯잎 송편은 그 향이 깊지 않지만 데워서 막 꺼낼 때와 한 입 깨물었을때 느껴지고, 호박 송편은 호박의 향과 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노란 빛깔이 참 먹음직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양과 가격도 시장 떡집에 비하면 비싸지 않은 편이라네요. (엄마의 체감 물가에 따르면 떡집 송편 1㎏에 1만원.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 기준)

마지막으로 단호박 식혜는 밥알이 들어있지 않아 좀 심심하지만 텁텁하지 않고 일반 식혜보다 깔끔한 맛이라는 게 엄마의 반응이었습니다.

피코크 모싯잎 송편과 호박 송편 각각 1봉지씩 총 2봉지를 데우면 사진 속 접시 2개가 채워집니다. 모듬전은 한 봉지에 담긴 것을 모두 데워 한 접시에 담았습니다. 단호박 식혜는 사진 속 유리컵으로 3컵 정도 되는 양입니다.
허리를 두드리시던 엄마가 10분 상차림에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서 ‘엄마의 종일 상차림’이 예전보다 더 애틋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그런 엄마를 보고 한 누리꾼이 피코크의 간편 조리 추석 음식을 보고 남긴 글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퇴행성 관절염이 와서 고통스러운데, 집에서 정성들여 만들면 좋겠지만 그러고나서 병원 다니느니 차라리 간편하게 사서 차례지내고 내 몸을 아끼렵니다”

실제로 한 쇼핑몰이 올해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 완제품 주문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60세대의 주문량이 크게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마트는 추석을 12~7일 앞둔 이달 15~21일 피코크 제수용 간편가정식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9% 늘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모듬전 매출은 32.4%, 동태전과 모싯잎 송편은 각각 47.8%, 11.0%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추세가 점점 더해지고 있는 이유는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과 1인가구·맞벌이 부부 등이 늘면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데 드는 돈·시간 등을 아끼려는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겠죠. 더불어 엄마들이 명절마다 지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엄마의 정성이 깃든 ‘종일 상차림’과 비교할 맛은 없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상차림 뒤에 엄마의 모습은 늘 씁쓸했습니다. 예(禮)와 정성을 차린 상차림도 좋지만 무엇보다 모든 엄마들이 가족과 ‘간편한’ 몸과 마음으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명절 연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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