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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제주의 기억을 걷다…'성산·오조지질트레일'

강경록 기자I 2015.05.26 06:33:10

성산일출봉 포함하는 8.3㎞ 순환코스
용암과 바다의 만남 '성산일출봉'
일제 아픔 서린 '동굴진지 유적지'
호수가 된 바다 '내수면'등

제주 서귀포시 성산웁 광치기 해변 풍경. 물질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해녀들이 바다로 향하고 있다. 광치기 해변은 성산일출봉과 해돋이를 함께 볼 수 있어 일출명소로도 잘 알려진 곳. 특히 지난달 공개된 성산-오조지질트레일 코스 중 수성화산 폭발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해변으로 주목받고 있다. 썰물 때 퇴적층이 드넓게 펼쳐지면서 짙푸른 바다빛과 어우러져 ‘원시의 바다’를 떠올린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요즘 제주도, 물 올랐다. 꽃은 흐드러지고 바다는 말대로 쪽빛이다. 이제부터 이 예쁜 섬에 갈 계획이 있다면 성산·오조지질트레일을 메모해두는 게 좋다. 자연이 조각한 기막힌 작품 속을 걷는 길이다. 경탄을 넘어 경외를 느끼게 한다. 제주의 지질트레일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브랜드를 활용해 제주의 문화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질자원과 향토색 농촌마을의 역사와 문화자원을 접목해 만든 걷는 길이다. 그중 하나인 성산·오조지질트레일은 제주에 있는 지질트레일 중 네 번째. 수월봉과 산방산·용머리해안, 김녕·월정지질트레일에 이어 지난달 공개됐다. 서귀포시 성산읍의 성산일출봉을 포함해 8.3㎞의 순환코스다. 보통 걸음으로 걷는다면 서너 시간 정도 걸린다.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 출발해 일본군 해군 특공기지터, 터진목-4·3유적지 해설 포인트, 철새도래지, 튜물러스(용암 활동으로 생긴 완만한 구릉을 이룬 지형)·밭담 해설 포인트, 식산봉, 성산항·우도 해설 포인트, 오조갑문로터리(성산 옛 세관 터), 시인 이생진 시비, 오정개를 거쳐 돌아온다. 걷는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성산일출봉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을 내보인다. 간간이 성산일출봉과 눈을 마주치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는 그런 길이다.

오조포구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 비친 성산일출봉과 물가에서 노닐고 있는 물새들이 어우려져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자연이 만든 커다란 배 ‘성산일출봉’

약 7000년 전. 제주도 동쪽 해안 인근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더니 ‘펑펑’ 터졌다. 수성화산활동이다. 마그마는 물과 만나면 더 격렬해진다. 마그마보다 물이 많으면 응회구, 적으면 응회환이 생긴다. 응회구는 화구에서 터져 나온 화산재와 암석 등 화산분출물이 축축하게 젖은 채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천천히 떨어지면서 쌓인 지형이다. 이런 지형은 가파른 경사가 특징이다. 성산일출봉이 대표적이다. 반면 응회환은 화산재와 분출물이 수평으로 퍼지면서 쌓인 지형. 그래서 완만하다. 용머리해안이 대표적이다. 보통 응회구는 한 차례 분출에 의해서 생긴다. 하지만 성산일출봉은 총 세 차례에 걸친 분출이 있었다. 첫 분출로 성산일출봉의 하단부가, 두 번째 분출로 중간부가, 마지막 세 번째 폭발로 지금의 상층부가 만들어졌다.

어쨌거나 성산일출봉의 태초 모습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바닷 속에서 태어난 이 오름은 태어나자마자 숙명적으로 풍파를 겪으며 제 살을 내주었다. 그러나 참 절묘하게도 이 응회구의 내부구조를 볼 수 있도록 분화구는 고스란히 남겨뒀다. 덕분에 오늘날의 성산일출봉은 웅장한 왕관 모양이다. 높이가 182m인 이 오름의 분화구는 지름이 600m나 되고, 넓이는 13만㎡, 화구 바닥의 길이는 90m에 이른다. 분화구만 남은 오름, 분화구로만 이루어진 오름인 셈이다.

분화구 주변에는 아흔아홉 봉의 거대하고 날카로운 기암이 장관을 연출한다. 커다란 왕관같기도 하고, 기개 넘치는 장군 혹은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은 동물 형상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등경돌, 장군석, 초관바위, 곰바위, 독수리바위, 거북바위 등으로도 불린다.

일제의 침략상을 보여주는 아픔의 역사 현장인 일제 동굴진지 유적지.


▲해안따라 새겨진 제주의 기억

성산일출봉을 뒤로 하고 가는 길. 진분홍색, 감청색 리본이 곳곳에서 길을 안내한다. 조금만 해안을 따라가면 일제 동굴진지 유적지다. 일제의 침략상을 보여주는 아픔의 역사 현장이다. 당시 일본군 7만 5000여명이 제주에 주둔했다. 그들은 제주 전역에 수많은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일출봉 해안가에 뚫린 동굴진지 역시 당시의 흔적. 일출봉은 일본해군의 자살 특공기지였고, 이곳의 동굴진지는 폭약을 실은 특공 소형선을 감춰놓기 위한 비밀기지였다.

길은 남쪽으로 수메밋과 너른모살, 광치기 해변으로 이어진다. 이들 해변 또한 수성화산분출물의 일부다. 일출봉 응회구 언저리가 바닷물과 빗물 등에 깎이고 흐르면서 주변 일대로 옮겨져 쌓인 것이다. 이곳 해변에서 바라보는 일출봉의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우면서도 어쩐지 애틋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이유다. 일출명소인 광치기 해변에서는 일출봉과 해돋이를 함께 볼 수 있다. 백미는 썰물 때 드러나는 속살 풍경. 모래도 아니고 돌도 아닌 퇴적층이 드넓게 펼쳐지면서 짙푸른 바닷빛과 어우러져 원시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썰물에는 해안선을 따라 폭 50m, 길이 3㎞의 나신을 그대로 드러낸다.

조금 더 내려가면 모래언덕인 터진목이다. 원래 성산리는 제주 본섬에 딸린 작은 섬이었다. 그러나 늘 고립된 섬은 아니었다. 썰물이면 가느다란 모래톱이 드러나 본섬과 이어주곤 했다. 본섬으로 가는 길목을 바닷물로 터진 곳이라 해서 ‘터진 길목’ 곧 ‘터진목’이라고 했다. 연륙공사는 일제강점기 때 했다. 그 뒤로 몇 번의 공사를 더 거치고 난 뒤 지금의 도로가 그 자리를 단단하게 이어 지금은 터진목이란 이름만 남았다.

오조포구에서 바라본 식상봉과 성산일출봉. 식산봉을 뒤로해 느끼게 되는 아늑함과 주변에서 바람따라 일렁이는 갈대들, 작은 어선 몇 척과 갯벌,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노닐고 있는 물새들이 어우려져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호수가 된 바다 ‘내수면’

터진목을 지나면 내수면이 나온다. 널따란 호수다. 과거에는 이곳도 바다였다. 100년 전에는 모래톱 너머 바닷물이 물 때 따라 넘나들었다. 터진목으로 길이 놓이고 갑문다리 공사로 갇히다시피 한 바다가 내수면이 된 것이다. 성산리를 뭍으로 풀어주는 대신 바다가 호수로 고립된 셈이다.

이 광활한 내수면에는 고기를 가둬잡아 기른 제주 최초의 양어장이 있다. ‘장정의보’와 ‘정도정보’가 바로 그것. 원리는 간단하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고기를 가두는 것. 돌담을 쌓아 보를 만들어 밀물에 가두는 시스템인데 그렇게 놓은 돌담이 ‘장정의보’다. 아직도 내수면 서쪽을 갈라놓은 돌담이 기다랗게 남아 있다. 하지만 이후 갑문을 세워 진짜 호수가 되면서 쓰임새를 잃었다. 지난해에는 20여년 만에 갑문을 열어 전국체전의 카누경기장으로 활용했다.

내수면 곳곳에는 속이 텅 빈 암반이 있다. 보통의 암반과는 다르다. 전문용어로 ‘튜물러스’. 뜨거운 용암이 단단한 암석에 갇혀 가스가 팽창하면서 암반에 공간이 생긴 것을 말한다. 이런 용암지형은 제주 중산간지대 곶자왈에서도 발견된다. 튜물러스를 지나 철새의 쉼터인 염습지를 지나면 밭담이 이어진다. 제주사람들은 마소의 침입을 막고, 밭 경계의 표지로 밭담을 쌓았다. 또 바람을 갈무리해 농작물을 보호하고 흙이 날리는 것을 막았다. 밭담이 있었기에 제주에 농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밭담은 꾸불꾸불 마을 어귀까지 이어진다.

마을을 벗어나면 오조포구다. 오조포구는 작고 아담해 왠지 친숙하다. 식산봉을 뒤로해 느끼게 되는 아늑함과 주변에서 바람따라 일렁이는 갈대들, 작은 어선 몇척과 갯벌,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노닐고 있는 물새들이 어우러져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이어 식산봉을 지나 갑문다리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그림 속을 걷는다.

철새들의 쉼터인 염습지.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노닐고 있는 물새들이 어우려져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여행메모

△가는길=제주여행은 차량을 렌트해 이동하는 것이 좋다. 공항 내 대여소가 마련돼 있어 쉽게 구할 수 있다. 제주공항에서 시내를 빠져나와 1132번, 1136번 도로를 타고 성산읍에서 일출로를 따라가면 성산일출봉 주차장이다. 대중교통으로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면 되는데, 701번버스를 타고 일출봉입구 정류정에서 하차하면 된다.

△볼거리=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에는 지난해 4월 문을 연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1호 전투기인 ‘부활호’ 복원 모형을 비롯해 영공을 지켰던 전투기 실물, 항공·천문학의 역사, 인류의 우주개발 도전사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꼼꼼히 관람하려면 반나절도 모자랄 만큼 알찬 아이템이 가득하다. 오는 8월 31일까지 개장 1주년을 기념해 기존 2만 5500원에 관람이 가능했던 4개 테마시설을 성인 기준 1만원, 어린이 기준 8000원에 모두 관람할 수 있다. 1층에는 항공역사관, 2층에는 천문우주관과 테마관, 3층에는 푸드코트와 상업시설, 4층에는 전망대가 자리해 있다.

성산 10경 중 하나인 ‘식산봉’
속이 비거나 갈라진 독특한 모양의 ‘튜물러스’
오정개해안
현무암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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