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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뿔·쌀로 만든 장신구…특권층 전유물 아닌 예술로

이윤정 기자I 2024.06.04 05:30:00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
한국·오스트리아 작품 675점 선보여
"장신구 발생부터 미래 움직임까지 살펴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새 날개 모양의 목걸이 같지만, 재료를 알고 나면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된다. 전은미의 목걸이 장식은 동물의 내장을 사용해 만들었다. 내장은 작가의 손에서 여러 번의 압착 공정을 거치며 양피지(소 ·양 ·새끼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서사재료)로 거듭난다. 이렇게 탄생한 목걸이에 금으로 도금한 머리카락을 결합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미셸 크래머의 목걸이 ‘배짱이 있나요?’는 질병으로 인해 표면이 손상된 정맥류 등을 연상시킨다. 소재는 피부와 마찬가지로 노화 과정을 거치는 라텍스이다. 두 작가 모두 ‘장신구=아름다움’이란 일반적인 인식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장신구를 제작했다.

공새롬 ‘버들강아지’(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전통 장신구의 의미를 넘어 새로운 시각 언어로 등장한 현대장신구를 조명한 전시가 열린다. 7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개최하는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이다. 1892년 한국과 오스트리아 수교 후 열리는 첫 대규모 예술 교류전이다. 오스트리아 작가 57명과 한국 작가 54명 등 총 111명 작가의 작품 675점을 선보인다. 김수정 서울공예박물관장은 “한국과 오스트리아에서 빚어진 현대장신구의 발생과 현상을 재조명하면서 미래의 움직임까지 살펴보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100여년 전 장신구는 권력의 상징이자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장신구를 제작하는 장인들은 착용자의 그늘에 늘 가려져 있었다. 20세기 이후 현대장신구가 등장하면서 작가들은 새로운 재료와 디자인을 실험적으로 적용했고, 독자적인 예술 장르를 개척해 나갔다. 1970년대 오스트리아 1세대 장신구 작가들은 페미니즘과 같은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장신구에 직접적으로 담으며 활동했다. 동시대 한국의 1세대 작가들은 금속공예 기반의 현대장신구에 신체성과 자연의 심상을 담아 은유적인 방식으로 풀어냈다.

미셸 크래머의 ‘배짱이 있나요’(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전시에서는 유럽 현대 장신구를 이끈 1세대 작가부터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이정규 작가는 화각(소뿔) 같은 고전적 재료와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장신구를 보여준다. 마치 CD를 연상시키는 화각으로 만든 장신구 등이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계의 선구자인 엘리자베트 데프너는 ‘막대-곤충’ ‘되부리장다리물떼새 해골’ 목걸이 등 동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장신구를 선보인다.

먹는 식자재를 장신구로 재탄생시킨 작품도 있다. 공새롬 작가는 쌀에 에나멜페인트 등을 입혀 정교한 브로치, 목걸이로 만들어냈다. 베른하르트 슈팀플 아벨레는 빵 반죽, 레몬, 사과, 감자 등과 같은 유기적 재료로 작업했다. 이렇게 탄생한 ‘과일 폭발’은 새카맣게 타버린 사과의 단면을 연상케 한다.

슈테피 모라베츠의 작품(사진=서울공예박물관).
장신구에 3D 제작, 플라스틱과 같은 산업 소재를 접목한 작품도 전시했다. 윤덕노 작가는 기계 장치와 움직임에 관한 관심을 키네틱 장신구로 표현했다. 키네틱 장신구란 착용자의 근육과 관절을 사용해 움직이는 것으로, 작품과의 상호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고대 전차에 새의 깃털을 결합한 듯한 ‘날개’ 시리즈는 움직이는 기어와 톱니의 원리에 몰두한 초기작업 중 하나다. 슈테피 모라베츠는 미래에 플라스틱 돌이 퇴적층에서 발견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다양한 종류로 구성된 돌을 장신구에 활용했다. ‘통제된 카오스’ 등의 작품은 특이한 색감과 기하학적 모양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다.

한국-오스트리아 현대장신구 교류전 ‘장식 너머 발언’ 전경(사진=서울공예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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