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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대학 생존, 고전에 답 있다

송길호 기자I 2022.12.05 06:15: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전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기업은 끊임없이 탄생과 소멸을 하는데, 대학은 왜 소멸하지 않는 것일까?” 오랫동안 대학에 몸담으며 자주 하는 질문이다. 이어지는 질문은 “우리는 과연 박사학위가 훌륭한 교수 혹은 강사의 자격을 보장한다고 할 수 있는가?”이다.

기록에 의하면 미국 최초의 박사학위는 1861년 예일대에서 수여하기 시작했고 이후 학위의 자격을 증명하는 표준이 됐다. 대학의 서열화는 1983년 US News & World Report 지가 미국 전역의 대학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면서이다. 이를 계기로 학생들이 더 높은 등수의 학교를 고르며 대학의 소비자가 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SAT 점수가 높은 학생의 수, 박사학위 교수의 숫자가 대학 서열의 기준이었다.

순위는 생존의 문제이다. 대학의 생존에 관해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1997년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지금으로부터 30년 후 대규모 대학 캠퍼스는 유물이 될 것이다. 대학들은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처음 책이 인쇄됐을 때만큼이나 큰 변화다.” 그가 말한 30년이 되려면 아직 5년이 남았으니 지켜볼 일이다.

어떻게 다른 여러 산업과 달리 대학이라는 독특한 산업은 계속 생존해 나갈 수 있을까? 바로 고등교육을 둘러싼 학점과 학위의 독점권과 정부 보조금, 그리고 대학보호에 얽힌 규제에 답이 있다. 누구에게나 ‘4년 기간의 교육, 3시간 강의에 3학점, 한 학기는 15주’ 등 평균적 표준화 시대의 산물이 여전히 대학을 지탱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획일화된 잣대의 대학평가 또한 이에 한몫하고 있다. 이렇기에 대학은 ‘즐거움이 죽으러 오는 곳(where fun comes to die)’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피터 드러커의 예견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많은 대학이 견고한 높은 장벽 안에 있는 동안 과감한 프로그램으로 세상에 나와 대학 브랜드를 높인 사례가 있는가 하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넘나들며 새로운 형태의 학습을 시도하는 캠퍼스가 탄생하고 있으며, 정규 캠퍼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과정을 깊이 있게 제공하는 학교 밖 학교 등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인트존스 칼리지의 ‘더 프로그램(The Program)’은 과감하고 도전적인 혁신사례로 꼽힌다. 졸업 시까지 100권의 고전을 의무적으로 읽고 소그룹의 학생들이 수없이 많은 토론을 한다. 이 학교는 재정 위기에 빠졌던 1937년에 이 프로그램을 전격 도입해 탄탄한 명문대학으로 성장했다.

이 대학의 특징은 인문, 역사, 철학 및 과학 즉, 문사철 교육과정을 핵심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문사철은 세상의 모든 요소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이해하고, 매우 다른 요소 간의 융합을 통해 창의의 깨달음을 얻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전 읽기는 오랜 역사를 통해 검증된 현인들의 지혜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통해 현실을 진단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수년 전부터 이러한 본질적 학습의 기운들이 생겨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다. 최진석 교수가 함평에서 운영하는 ‘새말새몸짓’ 기본학교와 서재경 선생이 세운 ‘아름다운서당’은 정규 캠퍼스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과정을 별도로 제공하는 학교 밖 학교이다. ‘아름다운서당’은 17년간 1000여 명의 청년 인재를 배출했다. 10개월간 매주 토요일마다 고전 읽기와 토론, 글쓰기 등의 지적 탐구와 사회봉사 등 강도 높은 공동 학습을 해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 참여하는 멘토, 교수들은 대기업, 금융기관, 언론계, 학계, 정부 등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해 해결방안을 탐구하고 실천했던 인사들로 구성돼 있으며 개인과 단체의 순수한 후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철학자 베이컨은 ‘독서는 완전한(full)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ready) 사람을, 쓰기는 정밀한(exact) 사람을 만든다’ 고 했다. 대학의 생존은 유행을 따르는 첨단 교수법이 아니라 바로 학교 안, 학교 밖에서 인문 고전을 통한 심오한 학습에 있다는 소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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