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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 외교 아마추어 같아…강제징용 협의체 격 높여야"

권오석 기자I 2022.08.29 06:00:00

[만났습니다①]강창일 전 주일대사 인터뷰
한일은 가장 가까운 이웃..관계개선 모두에게 이익
강제징용협의체 `총리급` 격상하고 새 출발해야
尹정부, 성과주의에 급급..조용하고 치밀하게 해야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역사디자인연구소에서 강창일 전 주일대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대담=이승현 정치부장·정리=권오석 기자] “강제징용 등 외교 문제는 성과주의에 급급하면 안된다. 조용히 치밀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 일본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데 우린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것 같다.”

대표적인 `일본통` 정치인인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지난 25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한일관계 복원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한일 양국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다. 둘이 손을 잡는다면 이뤄낼 게 많다. 세계로 웅비할 수 있다. 또 동북아 평화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4선 의원 출신의 대표적 `지일파` 인사인 강 전 대사는 2021년 문재인 정부 당시 주일본대한민국대사관 대사를 지냈다. 의원 시절에는 한일의원연맹 회장도 역임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선 쓴소리를 쏟아냈다. 외교부가 현재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운영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가 된 상황이다.

강 전 대사는 “다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설명하는 꼴이 됐으니 피해자들이 참여하려고 있겠냐. 정부가 실수했다”며 “협의체를 외교부 1차관 주재로 열고 있는데 이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격상시키면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피해자를 아우르는 합의안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2018년 12월 문재인 정부에서는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강제징용 민관 협의회가 운영한 바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역사디자인연구소에서 강창일 전 주일대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다음은 강 전 주일대사와의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어받겠다고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해서 자민당은 ‘노’(NO)다. 2018년(강제 징용 배상 판결의 해) 이전까지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에 대해 박수를 쳤는데 그 이후에는 아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반성과 사죄,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 구축이다. 근데 일본이 반성과 사죄를 하지 않고 있는데 무슨 얘기가 되겠나. 자민당이 반성과 사죄에 대해 언급이라고 하고 있나. 현 정권이 이런 사실을 몰라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거론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 해법 도출이 쉽지 않다.

△진정성이 없다. 치밀한 논리를 구성해 일본에 설득을 해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를 푸는 것이 일본을 위해서도 좋다고 말해야 한다. 일본은 현재 반중(反中), 반북(反北)을 하고 있다. 여기에 반한(反韓)까지 하면 아시아에서 외톨이가 된다. 일본도 동의한다. 서로 양보하면서 풀어야 한다. 외교는 과학이 아니다.

-민관 협의체에 피해자들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가 됐다.

△나도 늘 민관협의회를 구성하라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정부가 우물쭈물하다가 피해자들은 들러리가 됐다. 자기들이 다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설명하는 꼴이 됐다. 피해자들이 참여하려고 하겠나. 정부가 실수했다. 지금 차관이 협의를 주재하고 있는데, 격을 높여야 한다. 2018년 12월 초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민관 협의회가 운영된 적이 있다. 협의회 위상을 높이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여부에 대해 윤덕민 대사는 절차 동결을 주장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한국 정부 입장이 된다. 윤 대사가 실수한 거다. 물론 교수로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지만 대사로선 적절치 않았다.

-해법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정부의 대위변제가 있다.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 거다. 정부가 먼저 돈을 주고 추후에 일본 기업에 대해 구상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살아 계신 분이 많지 않아 시간이 급하다. 또 한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금하는 방법도 있다. 다만 두 방법 모두 일본 정부가 훼방을 놓으면 안 된다. 실제로 과거 이런 논의가 있었는데 아베 전 총리가 기업들에 응하지 말라고 해 실패한 경험이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부분에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역사디자인연구소에서 강창일 전 주일대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한일 관계를 꼭 풀어야 하느냐는 주장도 있다.

△거꾸로 묻고 싶다. 한일 관계가 나빠서 우리에게 좋을 게 뭐가 있나. 한일은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다. 일본과 한국이 손을 잡는다면 이뤄낼 게 많다. 세계로 웅비할 수 있다. 또 동북아 평화도 유지해야 한다. 또 정치적으론 한일관계가 나쁘지만 다른 분야에선 협력이 잘 되고 있다. 주일대사를 하면서 느낀 게, 안보국방·경제·문화 등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교적인 문제만 풀면 된다. 대표적인 게 한일정상회담이다.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이 있을까.

△양쪽 정부가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니 되길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우리가 자꾸 구걸하듯 회담을 성사시키려 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회담을 하려고 하고 일본은 뭘 갖고 오라고 하는 것 같다. 국민의 자존심을 생각해야 하는데 성과주의에 급급하다. 외교는 조용히 치밀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

-현 정부의 외교라인에 문제가 있다고 보나.

△외교 문제는 외교부만으로는 안 된다. 대통령이 통 크게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다. 대통령실이 주도해야 하는데 거기에 전문가가 없다. 박진 장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부에 전문가가 없다면 외부 전문가들이 조언이라도 들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도 없는 것 같다. 일본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데 우린 아마추어리즘에 빠진 것 같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과거사 문제만 놓고 보면 1965년 이후에 한일 관계가 좋았던 적이 없다. 1000년이 지나도 역사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래서 `멀티 트랙`으로 가야 한다. △역사 △정치·안보 △문화 △경제까지 `4트랙`으로 나눠 따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이 2019년 수출규제를 한 것은 바보짓이다. 역사문제를 경제와 합치면서 해법을 더 어렵게 했다. 이런 점을 일본에 얘기해 이해시켜야 한일 관계를 풀 수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역사디자인연구소에서 강창일 전 주일대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아베 신조 전 총리 사망 이후 일본 분위기를 예상한다면.

△아베 전 총리는 `이념가`형 정치인이자 우익의 아이콘이다. 추도 기간 동안 일본은 우경화 분위기로 갈 것이다. 그렇지만 아베파에 아베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실용적인 정치인이다. 본래 `코치카이`(굉지회) 파벌인데, 비둘기파이고 경제 중심주의가 서 있는 파벌이다. 기시다가 앞으로 몇 년 간 임기가 보장돼 있으니까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다. 이런 점만 보면 한일 관계 개선을 기대하게 된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노선`을 계승할 지 제 3의 길을 모색해 나갈지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 한일 관계가 악화됐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사 문제가 경제·안보 분야까지 전선이 확대해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 참모들이 고뇌를 많이 했다. 그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본에 가지도 못하면서 관계 개선이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물밑 작업은 이뤄지고 있었다. 현 정권은 전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내용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한일 악화 원인은 아베 정권이 있는데 왜 문 정부에게 책임을 묻나. 우린 노력을 계속 했다. 그걸 윤 정부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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