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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파동과정 사진으로…SF영화 속 신세계 온 듯

김은비 기자I 2021.12.16 05:47:00

폴란드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 개인전
'엔트로피' 물 떨어지는 과정 스냅샷 구성
무질서한 상태, 현실인식 등 대입시켜
쾨닉서울·페이스갤러리서울 30점 선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전시장 벽면에 가득 걸린 사진 속에 두 개의 빗방울이 물 위로 떨어지는 모습이 담겼다. 빗방울로 인한 충격으로 일어나는 사건의 순서는 명확하다. 먼저 파동과 패턴이 나타나고, 이들은 시간에 따라 서서히 변화한다. 짧은 시간 동안 물은 완전한 원을 이루며 바깥쪽을 향해 파동을 만들어낸다. 파동은 퍼져 나갈수록 점차 희미해진다. 잔물결은 물이 본래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 충격 에너지를 계속해 주변으로 확산시킨다. 마치 그릇 옆면과도 같은 가장자리를 맞고 튕겨 나오며, 물의 표면은 널리 분산된 균형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이 담긴 사진들이 걸린 전시장은 마치 공상과학(SF)영화 속 새로운 세계와 같은 이색적인 느낌을 연출한다. 폴란드 출신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의 신작 ‘엔트로피’(ENTROPIE)로, 물이 떨어지는 과정을 스냅샷으로 재구성했다.

쾨닉서울 전시 전경(사진=쾨닉서울)
‘엔트로피’는 무질서를 물리적으로 측정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작가는 이를 사람들의 현실 인식 및 구성 과정에 대입했다. 현실에서 우리는 불안정하고 무질서한 상태에서 세계를 경험하는데, 그 세계를 시계를 시간과 분을 중심으로 한 물리적인 시간 개념으로 측정한다는 것이다.

서울 청담동 쾨닉서울과 페이스갤러리서울은 최근 크바데의 개인전 ‘섬타임 아이 프리퍼 투 싯 온 어 체어 온 더 얼스 서라운드 바이 유니버스’(SOMETIMES I PREFER TO SIT ON A CHAIR ON THE EARTH SURROUNDED BY UNIVERSES)를 최근 개최했다. 크바데는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명이다.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에게 옥상정원에 놓일 조각작품을 주문해 설치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에서 열린 크바데의 첫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 크바데는 시곗바늘 작품 등 최근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 작업에서 작가는 사람들의 인식이 결정되는 우연성에 대해 탐구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된 작업은 시곗바늘 작업의 의미를 한번에 느낄 수 있다. 양면 거울로 각각 분리돼 원형 배열된 열두 개의 돌들로 구성된 작품은 시계를 연상하게 배열돼 있다. 열두개의 돌은 형태적 측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각각의 돌은 화강암,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이 조각 작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주위를 걸어보아야 한다.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거울은 반사되거나 투명한 표면으로 보이며, 돌들은 서로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를 마주하게 된다. 크바데는 “주변을 걸으면서 한 물체에서 다른 물체로, 또 그 다음 물체로 끊임없이 뒤집히는 것처럼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Siege du Monde’(Seat of the World·싯 오브 더 월드·2021), bronze, 75 x 49 x 49 cm (사진=쾨닉서울)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의자 모양의 설치작업 ‘Siege du Monde’(Seat of the World·싯 오브 더 월드)는 우리 자신의 감각적 인식을 탐구해 보게도 한다. ‘지구 위에 앉아 우주에 대해 생각한다’는 작가의 상상을 담은 작품으로 의자 아래에는 흙빛의 붉은색 바위가 고정돼 있다. 의자 위에 앉으면 마치 지구와 같은 행성 위에 앉아 생각을 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된다. 작가는 “단단한 돌과 청동으로 만들어진 의자는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다”며 “이는 우리가 세상에 대한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거운 무게로 인해 움직일 수 없어 우리의 위치에 갇혀버린 모습과 같다”고 작품의 의도를 설명했다.

이처럼 작가의 작업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인식부터 우주로까지 폭넓게 확장된다. 작가가 실제 작업을 위해 빅뱅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역사에 대한 이론을 참조한 영향 때문이다. 쾨닉서울 측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관람객은 우주는 점점 더 무질서해지고 있으며 사실 만물이 기존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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