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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칼럼] 다시보는 '문명의 충돌'

김민구 기자I 2015.11.20 04:01:01
최근 파리에서 발생한 테러사태를 보면서 몇 년전 타계한 새뮤얼 헌팅턴 전(前) 하버드대 교수가 문득 떠오른다. 정치학자인 그는 저서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국제사회가 냉전을 끝내고 가장 심각하게 직면한 문제가 문명간의 충돌이라고 진단했다.

문명 충돌의 핵심은 종교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립이 종교 갈등으로 부활했는데 그 중심에는 기독교 서구문명과 이슬람 및 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충돌이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헌팅턴 주장대로 옛 소련을 주축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져 이념에서 비롯한 냉전과 분쟁은 크게 줄었지만 특정 종교를 믿는 민족간 국지적 분쟁은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1세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충돌인 십자군 전쟁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번 파리 테러, ‘세계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 등 중동사태, 인도와 파키스탄 분쟁 등의 핵심은 종교간 대립과 반목이다.

종교로 대표하는 문명에 대한 배타심과 편견은 뿌리가 깊다.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문명비판론자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을 뜻하는 ‘오리엔탈리즘’이 동양에 대한 서양의 문화적 편견과 선입견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유명 삽화가 마테우스 메리안이 그린 ‘몽골군의 폴란드 침략’(1930)에서도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몽골군이 서양인 시체의 귀를 자르고 마을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도록 불을 지르는 야만성과 파괴심리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파리 테러는 헌팅턴 분석처럼 서구 기독교문명과 이슬람 문명간의 대립만으로 보기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없지 않다. 서구문명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을 보이며 전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슬람국가(IS)는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이슬람교를 가장한 극단주의 무장단체다. 이들은 이슬람교의 숭고한 정신과 철학을 저버리고 폭탄테러와 협박을 서슴지 않는 등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IS는 이슬람문명을 겨냥해 ‘악의 축’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후 마녀사냥에 나선 서구진영에 맞서 극단주의로 맞설 수밖에 없다는 ‘거짓순수’(pseudoinnocence)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의 논리가 모든 이의 공감을 사기에는 보편타당성이 결여됐다.

IS의 피해의식과 달리 서구 문화가 다른 문화에 비해 지나치게 우월하다고 할 수도 없다. 최근 에는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입증해온 ‘합리성’에 대한 믿음도 무너지고 있지 않는가. 이제는 특정 문명이 세계를 풍미하던 시대는 끝났다. 문명간 충돌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문명 상호간 융합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문명간의 함수관계는 특정 문명이 나머지 모든 문명에 일방적으로 영향을 미치던 단계에서 벗어나 모든 문명이 서로 다각적인 교섭을 하는 다문화 체제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19세기 유럽과 미국 엘리트 집단에서 ‘비위생적이고 몸에 해로운 음식’이라는 눈총을 받은 중국 음식이 이제 미국 음식문화의 심장부에 자리잡은 ‘중화화’(中華化)와 한국어를 모르지만 한국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매료돼 유튜브에서만 무려 24억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IS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IS가 봉착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답은 ‘소프트파워’다. 군사력 등 물리적 힘으로 집약되는 하드파워 시대가 보편타당성과 문화적 친화력으로 요약되는 소프트파워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세계 정치경제에서 뚜렷한 1등 국가와 리더십이 사라져 세계가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이른바 ‘G제로’ 시대에는 상대방을 통섭하는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이슬람문명이 갈등과 파괴의 본거지가 아닌 인류문화의 요람이라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은 셈이다. <글로벌마켓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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