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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덕 칼럼]포스코·KT 회장 흑역사 데자뷔

남궁 덕 기자I 2018.04.20 05:00:00

권오준 포스코 회장 돌연 사퇴
역대 8명 중 1명도 임기 못 채워
KT 황창규 피의자로 조사받아
‘핵심기업 CEO=정권전리품’은 적폐

[남궁 덕 콘텐츠전략실장]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임기를 2년 남기고 지난 18일 사의를 밝혔다. 권 회장은 이날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100년 기업 포스코를 만들기 위해 젊고 유능한 인재가 CEO(최고경영자)를 맡는 게 좋겠다”며 이사진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지난 1일 열린 50주년 행사에서 “또 다른 성공신화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었다. 외부 압력설이 아니고는 2주 새 뒤바뀐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이로써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포스코는 역대 8명의 CEO 중 단 1명도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흑역사를 쓰게 됐다.

지난 해 3월 연임에 성공한 권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방미 경제인단에서 제외되고 11월 인도네시아, 12월 중국 방문에서도 빠졌다. 재계에선 ‘권오준 패싱’을 사임 압력으로 해석했으나 권 회장은 굳건히 버티다가 결국 사퇴 수순을 밟았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됐다. 정부는 단 한주도 지분이 없다.

황창규 KT 회장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재계는 황 회장의 사법처리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우려가 현실화되면 KT는 남중수, 이석채 전 회장에 이어 3연속 CEO가 중도 퇴진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KT도 2002년 민영화됐다.

재계에선 ‘5년 법칙’이 재연되고 있다며 씁쓰레하고 있다. 두 공룡 기업 CEO를 정권의 전리품처럼 생각하는 정치권의 무뢰는 시장경제와 법치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흔드는 적폐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5년 전에도 그랬다. 2013년 8월28일 박근혜 대통령과 10대 그룹 총수 회동에 재계 서열 6위인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초청받지 못했다. 재계에선 “정 회장이 아웃 되는구나”라고 수군거렸다. 이어 박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9월7~11일) 동행 경제사절단 명단에도 정 회장은 빠졌다. 또 이석채 KT 회장도 이름이 빠졌다. KT 대관 팀엔 불이 났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된 상태였다. 두 사람 모두 아웃.

두 회사에 관한한 우파정권이나 좌파정권이나 입맛에 맞는 CEO 줄을 세우는 건 마찬가지다. 한발 더 나아가 규제산업의 특성으로 정부 입김이 강한 금융사 지배구조에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것도 정권승계(?)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정부가 개별기업의 실적과 미래 청사진에 대해 책임지지 않을 거면 CEO 인사에도 관여하면 안 된다. 누구는 안 된다고 사퇴압력을 넣으면 강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산업의 쌀인 철강을 만들기 위해 나랏돈으로 세워진 포스코, 통신주권을 세우기 위해 출범한 KT. 민영화됐지만 두 회사의 성공이 대한민국에도 좋다는 건 지금도 통한다. 이를 위해 확실한 주인을 찾도록 방향타를 제시하던지, 아니면 주인은 없지만 초일류 기업이 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을 벤치마킹하시라. 이사회와 후계자 프로그램이 작동하도록 정부는 손을 떼라는 얘기다.

꼭 관여하려면 ‘보이지 않는 손’을 정권 말 잘 듣는 사람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 방향으로 작동하시라고 충고하고 싶다. 정권을 내려놓더라도 두 회사가 승승장구하면서 일자리 산실이 되고 미래 먹을거리를 만드는 중추가 되면 이보다 더 큰 애국은 없다.

포스코는 임직원 1만7000여명이 연간 60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계열사 39개. KT는 2만3000명이 23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계열사 34개. 매머드 기업의 CEO가 예고 없이 날아가는 건 비극이다. 조직 동요가 크다. 서둘러 CEO를 뽑아야하는 이유다. 새로 선출되는 CEO는 주주와 투자자만 쳐다보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내부 조직을 잘 알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후보가 적임자다. 스펙 좋고 프레젠테이션 잘하는 사람보다는 불굴의 돌파력과 조직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출중한 후보를 뽑았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손’들도 이런 점을 잘 살피시라. 회사가 쑥쑥 성장해야 논공행상 낙하산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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