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지식재산의 부상과 금융의 역할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데이비드 보위는 글램 록(Glam rock))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가수이다. 그런데 보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보위 본드라는 증권 때문이다. 보위는 그가 발표한 앨범의 저작권에서 나오는 수입을 기초로 1997년 자산유동화증권을 발행하였다. 보위 본드가 도입된 이후 음악과 영화 저작권, 스포츠 중개료, 광고료, 특허권, 상표권과 같은 다양한 지식재산을 기초로 증권이 발행되었다.

하지만 지식재산에 기초한 증권이 모두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다. 보위 본드는 무단 복제 등으로 수익이 감소하여 신용등급이 떨어졌다. 특허권을 기초로 발행된 최초의 자산유동화증권인 예일대의 파마세티컬 유동화증권의 경우에도 대체기술 개발로 특허 수익이 감소함에 따라 일부 투자자가 손해를 입었다. 지식재산권 보호 제도의 미비, 기술 환경의 변화, 대체 기술의 도입과 같은 불확실성이 지식재산에 기초한 금융의 활성화에 제약 요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 플랫폼 경제의 발전과 지적재산권 보호 제도의 보완에 따라 국내 지식재산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본시장에서는 지식재산의 현금흐름을 활용한 자산유동화증권이 발행되었다. 주요 은행들도 기술평가에 근거하여 기술담보대출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부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국내 지식재산 금융은 아직까지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식재산 금융은 정부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식재산 및 기술에 대한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기술보증을 통해 기술력 있는 기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한편 혁신 기술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민관공동펀드를 조성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지적재산권을 유동화자산으로 명시하여 지적재산권 유동화증권 발행을 촉진하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지식재산 관련 투자는 일부 제한된 영역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민간부문의 지식재산 금융이 저조한 근본적인 이유는 지식재산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식재산은 사업화하는 데에 다양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사업화 이후에도 지식재산이 사장되거나 진부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신용보강이나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투자를 꺼리게 된다. 지식재산 관련 제도와 법적인 문제도 지식재산 금융 활성화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지식재산을 양도하거나 담보하는 경우 복잡한 법적ㆍ제도적 문제에 직면한다. 지식재산의 가치평가의 불확실성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식재산은 이를 사업화에 활용해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기관과 투자한 기관 간에는 가치평가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제약요인에도 불구하고 지식재산 금융의 활성화는 새로운 금융기법이라는 차원을 넘어 지식기반 경제 시대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특허관리회사인 오션 토모는 2020년 S&P500 소속기업의 시장가치 중에 무형자산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한다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에도 무형자산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지식재산, 기술능력, 브랜드가치로 대변되는 무형자산의 비중이 높은 기업이 주식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식재산의 축적을 촉진하고 무형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은 국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여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향후 지식재산 금융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부문의 지적재산 투자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도입된 음악저작권 거래 플랫폼은 민간의 지적재산 투자에 좋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티스트와 제작사로부터 음악저작권과 음반제작사의 인접권을 양수하여 경매 형태로 거래를 하는 음악저작권 거래플랫폼은 케이팝의 인기와 신세대의 투자성향 및 접근 편의성 등이 맞물려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투자자의 관심을 높이는 지적재산 관련 투자상품의 설계가 민간 투자를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금흐름 추정이 용이한 지적재산권을 기초로 금융상품을 도입하여 성공사례를 축적하고 투자자의 신뢰를 쌓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