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파동]②철근품귀에…“공사계약 눈물 머금고 포기했어요”

강신우 기자I 2021.05.20 06:00:00

원자재 수급불균형에 값 뛰고 품귀
계약 포기에 공기연장 건설사 ‘울상’
유가 상승 등 내년까지 부정적 전망
“정부, 수급 불안시 공기 연장해야”

[이데일리 강신우·김나리·황현규 기자] 작년부터 민간시설물 건축 공사수주에 공을 들여온 수도권의 중소건설업체 A건설은 최근 공사계약을 포기했다. 수급불안에 철근 값이 치솟고 이마저도 구할 수조차 없어서다. A건설사 대표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거의 계약 체결 단계까지 갔지만 철근 등 원자재를 구하기가 어려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하소연했다.

대형건설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올해 초 지방 발전소 공사를 시작한 B건설은 잠정적으로 완공 시점을 연기했다. 원자재인 고철을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B건설 관계자는 “통상 발주 요청을 넣으면 곧바로 수급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7일이 걸린다”며 “단기적인 수급 문제가 종종 있지만 이렇게 장기화한 경우는 이례적이다”라고 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철근 못 구해 공사중단 건설사 ‘속출’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철근·레미콘·PHC파일(고강도 콘크리트파일) 등 건설자재 수급불안으로 건설 공사를 중단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지난 3~4월, 2달간 종합건설공사를 대상으로 수급불안에 따른 공사중단 현장 수를 조사한 결과 총 59곳에서 공사중단이나 공정지연이 발생했다고 답했다. 공공현장은 30곳, 민간현장 29곳으로 각각 중단일수 평균 22.9일, 18.5일이다.

공사기간이 연장되면 건설사들은 통상 지체상금을 물어야 한다. 일종의 계약 불이행에 따른 패널티다. 공공 공사 현장의 경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따라 1일 지체시 계약대금의 1000분의 0.5를 지체상금으로 계상한다.

이를테면 공공 수주 공사금액 1000억원대의 A현장에서 철근을 구하지 못해 20일간 공사를 못했다면 10억원의 벌금을 내야하는 처지가 된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철근 부족으로 인한 중단사례가 많은 상황으로 공공·민간 관계없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며 “수급불안의 주원인은 제강업계의 ‘최적생산 최적판매’ 경영전략에 따라 생산량이 제한된 데다 중소건설사는 유통업체를 통해 물량을 공급받고 있는데 이들 업체가 매점매석하면서 시장을 더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철근 거래가격의 기준이 되는 SD400제품을 기준으로 작년말 t(톤)당 60만원 후반대에서 현재 97만원까지 치솟았다. 5개월 만에 40%가량 값이 뛰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들 사재기가 의심되는 가운데 중소건설사들은 상대적으로 물량 경쟁을 해야 하고 철근 품귀현상이 빚어지다 보니 일부에서는 톤당 120만원까지 부르는 곳도 있다”고 전했다.

원자재 수급 불균형에 대기업도 ‘불안’

대형건설업계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각 건설사는 이미 지난 3월 기업 분기보고서 공시를 통해 철근과 PHC파일, 레미콘 등 건설 원자재 수급불균형으로 가격이 2분기에도 크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C건설사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있어 공사 중단 사태까지는 없지만 품귀 현상이 지속하면 대형 건설사들도 공사 지연과 중단도 불가피하다”고 했다.

원자재파동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한 건설공사비지수동향을 보면 공사비지수(2015년 100기준)는 지난해 12월 121.8포인트(p)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며 지난 3월 125.93포인트를 기록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나타내는 지수다.

박선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최근 유가 상승과 건설용 중간재 생산원가가 동반 상승하면서 건설 자재비 역시 큰 폭 오르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원자재는 보통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데다 유가 상승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내년까지 건설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PHC파일도 작년 하반기부터 공사 급증으로 물량공급 부족으로 가격 상승기를 경험하고 있어 공사원가 절감을 위한 건설사의 선제적 전략 수립과 수급 차질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책마련 나선 정부…“지체상금 제외해야”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관련 대책마련에 나섰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건설업계 등은 18일 철강재(철근·형강) 등 자재 수급불안으로 건설현장의 공사중단 및 공정지연 발생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대책 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중간 유통상 사재기 단속 등 시장가격 교란 행위에 대한 단속과 함께 개선책 마련을 위해 논의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가 철강가격 상승에 따른 공사 현장 중단 등을 파악해 왔다”며 “중국산 철강 수입이 중단된데다 철강 가격이 인상되면서 위험 리스크가 커진 것으로 판단돼 건설업계 어려움을 개선할 방책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앞서 조달청도 철근 공급 안정을 위해 철근 하치장 긴급점검과 각 공공공사 수요기관에 긴급하지 않은 공사는 철근 납품기한을 연장하도록 요청하는 등 철근 수급상황과 대응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단기적인 개선책 외에도 자재수급 불안 등 수급인이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공사기간이 늘어날 경우 지체상금 부과를 제외하도록 하는 내용의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의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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