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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지원 아이돌보미도 믿을 수 없는 세상

논설 위원I 2019.04.04 06:00:00
생후 14개월인 아기가 중년 여성에게 뺨을 맞고 걷어차이는 등 지속적으로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개됐다. 가해자는 아이돌봄 서비스의 지원 교사였다. 가정에 파견된 돌보미가 돌이 갓 지난 유아를 석 달 동안이나 학대했다고 하니, 정부를 믿고 돌보미를 소개받은 맞벌이 부모의 심정이 어떠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보호자가 아이돌봄의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아이돌봄지원법의 규정이 무색하기만 하다.

사건이 터지자 여성가족부는 사과문을 발표하는 한편 아이돌보미를 이용하는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전형적인 뒷북 행정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아이돌봄 정책을 시작하기 전부터 돌보미들이 아이들을 폭행하거나 막걸리·수면제 등을 먹여 억지로 재웠다는 등의 고발이 잇달아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예산을 들여 돌보미 파견정책을 세웠으면 진즉에 기본적인 안전장치를 겹겹이 마련했어야 했다.

정부는 아이돌보미 숫자를 지난해 2만 3000명에서 올해는 3만명으로, 2022년에는 4만 40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인원을 시급히 보충할 수밖에 없다고 쳐도 단기간에 제대로 된 아이돌보미를 충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가 아이돌봄을 지원한다는 취지보다 일자리 늘리기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가해자로 입건된 50대 여성도 6년이나 일했지만 80시간의 사전 교육 가운데 아동학대 예방 교육은 고작 2시간뿐이었다고 한다.

아이돌보미 교사는 어린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도 사건이 표면화되고서야 신고 창구를 개설하는 등 호들갑을 떠니 그동안 여성가족부는 무엇을 했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아무리 지원 숫자를 늘려도 부모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집이든 아이돌봄서비스든 믿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정부는 “아이를 맡길 만한 기관이 마땅치 않기에 ‘제도적 불임부부’가 많다”는 하소연을 새겨들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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