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반도체 초강대국’을 실현하기 위해 반도체 특화단지까지 지정했지만 내년도 예산안에는 관련 인프라(기반시설) 조성 비용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양향자의원실과 정부 관계부처 합동투자계획안에 따르면 반도체 특화단지 2곳(경기 용인·평택과 경북 구미)의 내년도 인프라 필요 예산은 1조 2096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정부는 내년에 관련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으며 특화단지 관련 지자체와의 회의를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정부는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나오면 지원을 검토하겠다”며 뒷짐만 지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의 경쟁 상대인 미국이나 중국, 대만 등과 크게 대비된다. 인프라 구축은 대부분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으로 이뤄진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의 경우 전력 용수 폐수 처리 등의 인프라를 시에서 구축, 운영하며 기업은 사용 요금만 낸다. ‘반도체 굴기’를 내건 중국의 시안과 우시 등의 대표적 반도체 특화지구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기업인 TSMC를 보유한 대만은 과학단지 입주 기업에 인프라 시설 전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최장 5년간 토지 임대료까지 면제해 준다.
정부의 인색한 지원은 인프라뿐만이 아니다. 내년도 기술개발(R&D)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 5대 핵심 기술개발 사업 예산이 전년 대비 평균 18% 줄었다. 이 가운데 시스템 반도체 핵심IP개발 사업은 83.5%나 삭감됐다고 한다. 경쟁국들이 선진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 정부는 너무 안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7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으며 올 7월 반도체 2곳을 포함해 7곳의 첨단산업 특화단지를 선정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 경쟁은 국가 총력전”이라며 “기업과 투자, 인재가 다 모이도록 정부가 제도 설계를 잘 하고 인프라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예산이 제때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반도체 초강대국 실현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도체 산업은 투자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