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29일 양국 재무장관회의에서 8년 만에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규모는 100억달러 수준으로 전액 달러 기반으로 교환이 이뤄지는 만큼 한미 통화스와프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앞서 27일엔 일본이 4년 만에 화이트리스트(수출무역규제조치)를 복원하면서 한일 수출 규제 갈등은 해소된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한일관계 복원에 선제적으로 나선 후 관계 정상화를 위한 가시적 조치들이 차례로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그동안 양국 간 통화스와프는 외교 지형에 따라 부침을 심하게 겪었다. 2001년 20억달러로 시작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2012년 잔액 기준으로 700억달러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그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규모가 점차 축소되다 2015년 2월 끝내 종결됐다. 그만큼 이번 협정은 최근 급물살을 탄 한일 해빙무드를 반영하는 낭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협정은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국내 외환시장에도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할 전망이다. 미국 등 주요국 기준금리 인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 환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 달러 유동성을 신속히 확보할 안전판을 하나 더 확보했다는 점은 시장에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급격한 엔화 약세 상황에 직면한 일본도 달러 기반의 통화스와프 체결이 엔화 가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양국 모두에 윈윈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파탄 직전까지 치달았던 한일관계는 지난 3월 윤 대통령의 방일과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답방으로 정상 궤도에 겨우 진입했다. 하지만 그동안 실질적 협력조치들이 나오지 않아 양국 관계의 복원을 바라지 않는 국내 반일세력과 일본내 혐한 세력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조치들로 신뢰기반은 한층 공고해졌다. 이번 성과를 마중물 삼아 양국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 과거사 문제나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문제 등 민감한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진일보한 해법을 통해 이견을 좁히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